2018/12/22 23:17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고 2018

문유석이란 판사가 개인적 사변을 쓴 책이다. 이 책이 유명하다고 했고, 손석희 사장이 추천했다고 했다. 글쓰기에 재주가 많아 미스함무라비란 소설책도 냈고, 그것이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인기가 있었다. 검사에 이어서 판사가 쓴 책이라...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서 읽어봤는데 제법 재미있었다. 재미있었던 이유는 이 사람의 생각과 사고의 틀이다. 혼자 있기 좋아하고,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게 힘들고, 역시 술 싫어하고, 협동 단결을 내세워 조직적 생활을 강요하는 것 질색하는 것 등등 해서 말이다.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어도 검사나 판사는 생활하는데 별 탈이 없나 보다. 제법 잘 살아왔으니 말이다.

우리나라 문화는 학연, 지연, 혈연 등등해서 관계를 중시하는 면이 강한데 세계에서 행복하다는 나라를 쭉 돌아보면 북유럽이나 유럽, 미국 등등의 국가는 개인주의가 강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개인적 행복도가 낮은 나라를 보면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등등 해서 아시아 국가들이 많은데 공통점은 개인주의보다 집단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대의를 위해서 나를 희생해야 하고, 나 자신보다 조직을 우선해야 한다. 그게 좋으냐? 나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계속 고속성장을 위해 압축 성장을 해 왔는데 이제 거기에서 벗어나 나를 다시 돌아봐야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이익인가보다 무엇이 좋은가가 더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개인적 얘기도 나왔다. 책을 좋아해서 어려서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었는데 어느날 아버지께서 텔레비전 프로를 보고 속독을 배우라고 해서 학원에 갔는데 자기는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꾸역꾸역 다니다가 어느날 원장이 시범을 보이라고 하니 이미 읽은 책이었던 것을 대충 속독으로 읽은 시늉을 하고, 이야기 살 붙여 얘기했더니 모두 놀랐다는 얘기. 그런데 원장도 의심을 해서 금병매(설마 이 책은 읽지 못했겠지란 마음과, 진짜 얘가 속독을 하고 있나라는 의심이 들어서) 소설책을 보고 속독을 해보라고 사람들 앞에서 권했단다. 대충 봤는데 이야기의 배경이 수호지와 반금련의 이야기라 대층 이야기 꾸며서 얘기했더니 모두들 넋이 나갔다는 얘기. 전국 문과 수석으로 대학을 갔는데 같이 간 동창은 대학에서도 열심히 공부해서 하버드 로스쿨 나와 대학교수하는데 자기는 대학에서 놀다가 정말 간신히 사법고시 합격하여 판사가 되었다는 얘기도 재밌다.

미국에 대한 얘기도 재밌다. 1년동안 살아보니 너무 답답한 점이 많았다는 것이다. 한국과 다르다는 것이다. 답답한 점이 많고, 서비스는 형편없고, 책임감도 없는 공공기관과 서비스업들. 그런데 그런 그들을 품고 가는게 미국이다. 배우지 못한 이들에게도 기회를 주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임계점에 도달하여 폭동이 나기에 사회에서 감수할 비용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이민들의 유입으로 인해서 재정은 계속 들어가니 트럼프같은 인물이 당선되는 것이다.

북유럽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바이킹의 후예들. 수입의 절반을 세금으로 걷어가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지급하여 대기업은 임금삭감 효과를 얻고, 중소기업은 그 임금을 감당치 못하는 곳은 자연적으로 구조조정을 당하게 된다는 것. 깔끔하다. 우리나라도 좀비기업들이 많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임금격차도 심한데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지급하면 그 임금 감당하지 못하는 좀비 기업들은 자연히 정리될 것이고, 굳이 대기업 들어가려 애쓰지 않을 것이고, 임금차이가 별로 없다면 인서울에 목메는 사교육 광풍도 조금은 줄어들 것 같다. 그러나 저자처럼 나 역시 수입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라고 하면 반대다. 아직 우리나라는 신뢰가 부족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글은 지도를 펴놓고 우리나라를 떠나 살만한 나라를 찾아보라는 것이다. 많을 것 같지만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새벽까지 술취해서 거리에 누워도 걱정없는 나라가 얼마나 되며, 빠른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이룬 나라가 얼마나 되는가 말이다. 한국을 즐거운 지옥, 북유럽을 지루한 천국으로 비유한 것도 재밌다. 많은 것을 가졌으나 우리들이 모두 관계에 얽매이다 보니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을 못하고 계속 주변만 의식해서 불행해진다고 했다.

검사내전에서 나왔던 조정담당판사로서 재판 조정을 담당할 변호사를 구하고 조정위원회를 구성해서 법원에 서기 전에 기해자와 피해자가 만나 다시 한번 중재해보는 시스템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좋았다. 법원에 서면 이분법적으로 판결이 나지만 중재는 서로 이해하고 합의하면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는거다. 조정위원은 퇴임한 법률가나 교장, 건축업자 등등해서 여러 직종을 가진 사람들이 맞는데 이들에게 필요한 능력이 사태의 본질을 파악할 능력, 즉 숨은 의도를 재빨리 찾는 것이다. 겉은 이렇게 해달라고 하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다른 뜻이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것을 재빨리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경청하는 모습. 많이 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카리스마. 결정적 순간에 자신이 중재안을 내고 이를 밀어붙일 카리스마가 필요하고 마지막으로 인내심도 필요하다. 그리고 독선적이거나 권위적이지 않고 둥글둥글하고 원만한 인상과 마음도 중요해서 상대방이 쉽게 마음을 열 수 있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미래에 대한 얘기는 미국에 대한 부러움이 있다. 패스트 팔로워로서 우리는 열심히 쫓아왔지만 미국은 인공지능을 선두로 나노산업 등등해서 앞으로 미래에 세상을 뒤바꿀만한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일상이 얼마나 바뀌고 있으며, 앞으로 인공지능 때문에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잃게될까 말이다. 미국은 그런 점에서 세대를 선도해나가니 부럽다고 했다.

신문이나 잡지에 낸 칼럼을 묶어 책으로 냈다는 생각이다. 짧은 단편들이 묶여 있다. 아무 곳이나 순서없이 읽어도 전혀 지장 없다. 개인적인 생각은 우리 사회가 조금 더 개인주의자들이 많이 등장하는 사회가 되어 제발 조직을 앞세운 그런 논리가 더이상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2018/12/20 21:24

검사내전을 읽고 2018

이 책이 나왔을 때 난 이 책을 쓴 의도를 의심했었다. 검사는 적폐세력이었고, 아직도 검찰청 내부에 박근혜를 도운 적폐세력들이 있어서 언제 문재인을 흔들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래서 공수처를 도입하니 뭐하니 그런 사건이 계속 신문에 보도될 때였다. 그럴 때 생활형 검사가 쓴 책이라... 이건 검사에 대한 이미지 세탁이 아니고 무언가 말이다. 그러다가 그 책을 쓴 김웅검사가 JTBC '차이나스 클래스'에 나와서 자기가 쓴 책을 가지고 2회 강연을 했는데 재미가 꽤 있어서 그렇다면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해서 집어들었다.

우선 마음에 드는 것이 혼자 있기 좋아하고, 조직에 엮이는 것 싫어하고, 자유로운 정신 가졌고, 특히나 술마시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이 좋았다. 그런 사람이 검사라니... 검사동일체의 원칙이 있는 그 조직에서 정말 살기 어려웠겠다 싶었는데 나름 잘 살았나보다. 책 읽으면서 재미있는 부분이 많았다.

1부는 사기와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우리나라 사기범은 얻는 이익에 비해 형량이 낮아 재범률이 높다고 한다. 그래서 피해자는 풍비박산이 나도 가해자는 잘사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단다. 그래서 가장 많은 피해가 사기 피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소개한 사례들을 봤는데 잘못걸리면 가정 하나 작살나는 것은 순간이겠구나 싶었다. 사기꾼들이 너무 얄밉게 나왔다. 그러면서 내공이 커서 법망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다시 사기치고... 얄미워서 뺨 한대 후려치고 싶을 때가 많았다. 가장 인상적인 표현은 사기범이 재판을 받을 때 피해자는 뇌졸중에 걸려 누워있는 것 보다 가해자의 치질이 재판에서 정상 참작을 받는다는 부분은 이게 대한민국 법정이 맞나 싶었다.

2부와 3부는 그냥 에피소드로 건너 뛰고, 4부에서 제법 얘기할 것이 많았다. 법 좋아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고소를 많이 하는데 고소는 마지막에 선택해야 할 최후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누가 날 고소하면 경찰이나 검찰은 영장을 발부받아 내 통화기록이나 사생활들을 모두 들춰본다. 그것으로 부족하면 구속영장 청구해서 나의 일신을 유치장에 가둘 수도 있다. 어느날 갑자기 날아든 한통의 고소장 때문에 국가의 공권력이 나의 사생활을 파헤치고, 나의 일신을 구속하는 것이다. 거기에 내 의지는 없다. 거기서 해방되는 방법은 재판에서 이기는거다. 그러려면 좋은 변호사를 사서 재판에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하고, 나의 시간도, 정력도, 돈도 엄청나게 소비된다. 그리고 설사 내가 승소했다고 해도 남는 것은 없다. 돈을 버는 사람은 변호사 뿐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고소하지 말고 서로 화해나 조정으로 끝을 봐야한다. 변호사들은 새로운 루트를 개척해서 이사건, 저사건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고소하라고 꼬득이지만 그래서 득 볼 사람은 그들 밖에 없다. 원고나 피고 모두 패배자일 뿐이다. 그래서 무슨 사건만 터지면 법을 더 엄하게 해서 이런 범죄를 뿌리뽑자고 하는데 그건 시민의 권리를 국가에 헌납하는 꼴이다. 권력자들로부터 빼앗온 권리들을 그들에게 코풀지도 않고 돌려주는 것이니 조심해야한다. 국가가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최소한으로 줄이는게 좋은 것이다.

우리나라 법의 문제점은 문제가 발생해도 피해자가 쏙 빠지고 국가가 나서서 그것을 해결한다는 것이다. 국가가 가해자에게 벌을 주고, 벌금을 걷어 피해자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 귀속시킨다. 피해자를 위한 것은 없다. 사기를 당해도 판사가 사기범에게 2000만원 벌금 때리면 국가가 그 돈을 가져가고, 피해자는 다시 민사소송을 걸어야 한다. 또다시 지루한 법정싸움이 시작되고, 승소해도 이미 사기범에겐 돈이 없다. 결국 사기범은 돈을 몰래 돌려놔서 이득이고, 국가는 벌금을 받아 이득인데 피해자에겐 아무것도 없다. 우리나라의 법의 맹점이 이것이다. 그리고 피해자는 용서해줄 생각이 없는데 판사는 집행유예를 선고한다. 초범이라 봐주고, 부양할 가족이 있어서 봐주고, 심신미약이라 봐주고, 하다못해 치질이 심해서 봐준다는 것이다.

이런 제도는 좋을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저자는 회복적 사법 이론을 들고 나왔다. 소외된 피해자와 가해자가 만나서 서로 조정하자는 것이다. 가해자가 사과하고 자신이 갚을 수 있는 최대치를 직접 피해자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피해자가 용서를 하면 조정이 끝나고 사건은 마무리된다. 법정으로 가지 않는 것이다. 이 제도의 좋은 점은 직접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만나서 합의와 조정을 할 수 있고, 피해자가 용서의 주체가 될 수 있고, 법정에서 '모 아니면 도' 식의 결단내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많은 국가에서 이 제도를 도입하여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가장 많이 반대하는 것이 법조계다. 자기들의 기득권이 도전받기 때문이다. 한자를 지배했을 때 양반은 양반일 수 있었고, 성서를 신도들이 읽을 수 없어야 신부님의 말씀에 힘이 생긴다. 개나 소나 서로 만나 조정을 하면 굳이 법정이 필요없고, 그들은 용도폐기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흐름은 그쪽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또 다른 단점 하나는 가해자가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해야만 이 화해와 조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가해자가 끝까지 잘못을 시인하지 않으면 답이 없다. 그리고 대다수 경제 사건의 경우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공권력을 휘두르는 것도 문제가 있다. 사법부는 제 3의 권력이고, 그들은 입법부나 행정부와 달리 국민들로부터 선출되지 않았다. 판사나 대법원, 헌법재판소의 법관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치르고 나서 그 자리에 올랐다. 국민들이 그들을 뽑은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국민의 법감정에 관심이 없다. 대기업 사주는 법원에서 늘 아팠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몇년 때리고 늘 빠져나왔다.

마지막으로 다룬 것이 재판소원이다. 재판소원은 대법원의 결심 공판이 끝나고 억울한 피해자가 제대로된 판결을 받지 못했을 때 헌법재판소에 한번 더 재판을 받게 해달라는 것이다. 1987년 민주화의 봄이 왔을 때 국민들의 열망에 힘입어 헌법재판소가 생기고, 헌법재판소를 운영할 법률을 제정할 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여야의 법률안을 무시하고 하룻밤 만에 뚝딱 만들어 다음날 공표한 내용인데 그것은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로 바뀌었다. 공권력 중에 하나가 사법권인데 사법권은 아예 헌법재판소에서 다루지도 못하게 바꿔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법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리하여 이제라도 그 법을 바꿔 재판이 잘못되면 헌법재판소에 다시 재판을 받을 국민의 권리를 찾아와야 한다.

읽다가 느낀 점은 비유가 많아 재밌고, 내용도 재밌고, 검사들의 생활도 조금은 알 수 있는 것 같아 재미있었다. 검사는 피해자를 보호해주지 않고 피의자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리라는 것도 허무하고, 재판의 결과로 피해자가 얻는 이익은 없고 오히려 가해자나 변호사 등 다른 사람들이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게 허무하고, 이런 저런 얘기 들어보니 아무래도 법원이나 검찰 쪽은 내 주변에서 멀리 떨어지는게 상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검찰이 많은 권한을 가진 나라는 좋은 나라가 아니라는데 동의하고, 이제 김웅검사에게, 아니 우리나라 검사들에게 조금 더 쉴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주기 위해서 하루빨리 배심원제도도 강화하고, 자질구레한 사건들은 조정위원회 설치해 검찰로 가기 전에 끝났으면 좋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고위공직자비위수사처도 빨리 설치되어 나쁜 검사나 판사들도 제대로 사법적 재판을 받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또다른 공권력의 강화인가?

2018/11/21 18:18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2018

알랭 드 보통이 쓴 연애소설이다.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박웅현이 쓴 책은 도끼다란 책에서 이 책에 대한 예찬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연애소설이지만 아주 드라이한 내용에 철학적인 문장까지, 감성적인 연애소설은 아니지만 연애의 본질을 제대로 파헤쳤다고 써놨다. 

연애의 본질이 뭔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를 좋아하면 언제나 약자가 된다. 기다리는 사람이 약자다. 무심한 사람이 강자다. 최소한 연애에서는... 이유야 연애를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더 많이 좋아하면 더 많이 양보하게 되어있고, 더 많이 가슴 아프다. 

그런데 왜 사랑에 빠지는가? 그와 내가 다르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매력을 발견했기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매력을 발견하려면 그 사람이 무심해야 한다. 만약에 무심했던 그가 나를 좋아하는 순간, 그는 덜덜거리며 제대로 된 말도 못하고, 얼굴도 빨개지고, 행동에 실수가 많아질테니 나는 그에게 흥미를 잃는다. 고로 그는 나를 좋아하지 않아야만 사랑에 빠지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주인공인 나는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데 마침 옆에 앉게 된 클로이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야기가 잘 통했고, 자신이 가지지 못한 면들을 발견한 나는 곧 그녀와 수하물 받는 곳에서 만나기로 하고, 다음에 또 연락을 하기로 하고, 초조함과 기다림에 연락을 기다리고, 그러다가 짧은 만남에 난 안타까워하는데 상대방은 무심해 속상하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녀도 나에게 빠져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둘은 사랑을 하게 된다.

나는 그녀와의 첫 만남에 큰 의미를 둔다. 그녀는 원래 내가 탈 비행기가 아닌 다른 비행기를 탔어야 했는데 집에서 늦게 출발하여 비행기를 놓쳤고, 그래서 기다린 몇편의 비행기 중에서 내가 타고갈 비행기를 선택했고, 그 비행기 안의 수백개의 좌석 중에서 바로 내 옆의 자리를 선택한 것이다. 이렇게 선택될 확률은 989.727분의 1이다. 이것은 나와 클로이가 사귀면서 하나의 전설로 만들어버린, 그리하여 우리의 만남은 매우 특별한 것이 된다.

왜 나를 사랑할까? 나는 그녀에 비해 한없이 초라하다. 만약에 나를 그녀가 받아들인다면 그녀의 안목은 형편없는 것이 되고, 그런 안목을 지닌 그녀를 난 사랑할 수 없다. 미국의 희극인 마르크스(우리가 아는 마르크스가 아닌)는 자신과 같은 사람을 회원으로 받아줄 클럽에는 가입하지 않겠다고 농담을 했단다. 그런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연애시장에는 풍성하다. 나보다 잘났고, 나보다 매력적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나를 선택해주면... 그때부터 그녀의 가치가 푹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나도 그렇다. 그리하여 그녀와 첫날 밤을 보낸 다음날, 나는 그녀를 울리고 말았다.

그러나 나도 결국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클로이의 집에 가서 부모님과 인사도 한다. 클로이는 자기 부정이 심하고, 그녀의 부모님도 자기 딸과 사귀는 남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누구보다 예쁘다.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움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패션잡지에 나오는 수학적으로 완벽한 비율을 갖춘 몸매와 얼굴을 소유한 미인들과 다르게 클로이는 약간 삐딱한 자세에 소심하고, 가냘프지만 나는 그녀에게서 체화된 그녀의 느낌을 좋아한다. 

내가 클로이에게 소개해줬던 친구 윌이 그녀와 잠자리를 했다는 사실을 그녀와 여행길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듣는다. 그리고 그녀는 더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펑펑 운다. 그러나 그녀는 비행기에서 내려 곧 윌에게 가고 둘은 또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난 비행기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직장도 못나가고 웅크려 있다. 머릿속으로 갖은 상상을 다 한다. 나락으로 떨어진 것 같다. 

그래, 죽자. 죽어서 나와 헤어진 클로이에게 복수를 하자. 그녀는 자신 때문에 죽은 나를 보면서 엄청난 양심의 가책을 느끼겠지.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난 그녀가 양심의 가책을 받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죽으면 그 모습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사라져야만 그녀가 고통스럽고, 그 고통스러운 모습을 봐야하는데 그렇다면 난 죽을 수가 없는 아이러니가 또다시 생긴다.

결국 그는 죽지 않고 견딘다. 견디다가 어느날 그녀 집 근처에 가는데 그녀가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여기 찾아온 용건을 빨리 해결하려는 의지가 앞섬을 깨닫고 놀란다. 그러다 어느 파티에서 새로운 여인을 만난 나는 또다른 사랑에 빠진다.

알랭드보통은 철학을 가르치는 사람이라 말을 어렵게 해놓는다. 옛 고전을 읽어보면 단락 앞에 숫자가 쓰여 있는데 이 소설도 문단 앞에 숫자가 쓰여있다. 성서나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나 장자의 한 대목을 읽는 것처럼 부담스럽다. 책의 내용도 건조하다. 감성적인 소설이 아니다. 그러나 사실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써낸 날것 같은 기분이 드는 소설이다. 연애소설의 날것을 그대로 썼다고나 할까. 이 소설이 나올 때 그의 나이 한창인 20대였는데 사랑의 본질을 그 젊은 나이에 썼다니 대단하다. 

우리는 사랑일까란 소설도 있다. 그가 여자의 시점에서 쓴 연애소설이라고 한다. 

2018/09/17 16:33

두 얼굴의 조선사를 읽고 2018

  '군자의 얼굴을 한 야만의 오백년'. 부제가 이렇게 적혀 있다. 조선의 역사는 성리학의 역사인데, 성리학의 역사를 야만의 역사라 한 것이다.
  번지가 공자에게 물었다.
  "인(仁)이란 무엇입니까?"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중궁이 공자에게 물었다.
  "인(仁)이란 무엇입니까?"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조선 오백년은 성리학의 나라였고, 공자의 나라였다. 유학이 나라 근간을 이루었다. 그 중심에는 공자가 있다. 공자의 근본사상은 인이고, 그것은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고,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 과연 조선은 성리학의 근본을 잘 지켰을까?

1. 철저한 신분제 사회
  조선은 신분제 사회였다. 사농공상으로 나뉘어 반상의 구별이 엄격한 나라였다. 개국 초기에만 해도 10%정도가 양반이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양반의 수는 줄어들고 노비의 수는 늘어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적서의 차별이 심했다. 정실부인이 아닌 첩에서 난 자식은 서얼이라 하여 차별을 둔 것이다. 그러니 양반이 될 수 있는 숫자는 점점 줄어들게 되어 있다. 한번 양반에서 기득권을 갖는 세력은 새로운 계층이 양반으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각종 사회 제도(법)이나 관습, 정치력을 동원하여 철저하게 막는다. 그렇게 해서 왕과 양반은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끌어주는 철저한 네트워크로 오백년동안 서로 잘먹고 잘 살았다.

양반이 되지 못한 이들은 각종 세금과 병역의무를 지고, 노비는 죽을 때까지 양반의 수발을 들어야 한다. 흉년이 들면 가족들이 모두 자기 동네를 버리고 도망간다. 그 책임은 옆집에서 지게 된다. 그런 백성의 고통에 양반들은 무신경하다. 자신들은 들어올 쌀만 잘 들어오면 되기 때문이다.

양반은 돈을 멀리했다. 어떻게 양반이 더러운 돈을 만질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국가가 나눠준 토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해마다 엄청난 쌀이 나온다. 그것이 돈과 다를 바가 뭐 있겠는가! 임금은 개국공신을 비롯하여 양반들에게 토지를 하사하고, 후기로 갈수록 양반들이 고리로 이자를 주어 백성의 땅을 뺏는 방법을 써서 지주가 된다. 그리고 몇백명, 심지어 천명이 넘는 노비들을 동원하여 농사를 짓고 자신은 편안하게 글공부를 하면서 보낸다.

양반들은 상공업을 활성화시키지 못했다. 상공업이 활성화되면 중인계급에서 큰 부자가 나오고, 이들은 새로운 저항세력이 되어 언제 자신들의 목에 칼을 겨눌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냥 이대로가 좋은거다. 굳이 상공업을 발전시켜 나라가 발전하면 자신들이 위태롭기 때문이다.

형벌도 다르다. 양반은 노비를 때려죽여도 상관없지만 노비가 양반을 욕하면 죽어야 한다. 같은 잘못을 했어도 신분에 따라 죄목이 달라진다. 양반은 귀양가는 것으로 끝나고(그것도 자신이 쓸 것들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가다가 말이 힘들어 죽는 경우도 있었다), 중인이나 노비는 곤장에 처해진다.

일반 백성들은 양반을 원망하지 않고 중인 계급을 욕한다. 양반은 중인 계급에게 쌀을 수급하는 책임을 주고 대신에 월급을 주지 않는다. 그럼 이들은 농민들을 착취하여 자신들의 먹을거리를 얻고, 농민들은 양반을 욕하는게 아니라 중인계급들을 욕한다. 일종의 중간지대를 만들어서 양반이 들어야 할 욕을 대신 얻어먹는 것이다.

2. 왕과 양반과의 관계
  왕의 목표는 자신이 계속 왕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 후대에도 내 자식들이 왕으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 권리는 역린과 같은 것이다. 건들면 안된다. 양반들은 왕의 그 권리를 보호한다. 왕을 인정하고, 그가 계속 왕이 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이유는 한가지. 그렇게 해서 내가 얻는 이익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양반 지위를 왕으로부터 보장받고 편안한 삶을 살아가는 것. 그래서 연산군이 쫓겨나도, 광해군이 쫓겨나도 양반들은 그들 속에서 왕을 뽑은 것이 아니라 전주이씨 가문에서 왕을 뽑았다. 그렇게 서로 공생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왕과 양반은 서로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든든한 카르텔을 맺고 서로 도와준다. 전 인구의 5%밖에 되지 않는 양반을 위해서 95%의 백성들이 죽어나는 꼴이지만 왕은 개으치 않는다. 과연 정도전이 신권정치를 펼친다고 했을 때 원했던 이상향이 이런 모습이었을까?  조선 초기의 한명회의 집이나, 중기의 윤원형의 집이나, 말기의 안동김씨의 집에서 과연 백성을 위하는 인의 정치를 하는 양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가?

  양반은 과거에 합격해야 양반의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 3년마다 한번씩 과거시험을 치렀지만 왕은 그 사이사이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부정기적으로 과거시험을 치러서 인재를 등용했다. 조선 500년동안 문과 합격자는 1만4600명, 그중 40%가 21개 정도의 씨족에서 나왔다. 300명 이상의 문과 합격자를 낸 가문은 전주이씨(847명), 안동권씨(358명), 파평윤씨(339명), 남양홍씨(322명), 안동김씨(310명)이고 100명 이상을 낸 씨족을 합치면 전체 합격자의 절반이 넘는다. 결국 몇개의 씨족이 전체 조선사회에서 잘먹고 잘산 것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평생을 고생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사회였다. 그것이 과연 인의 나라였던가? 백성을 사랑하는 나라라고 할 수 있는가 말이다. 철저하게 이기적인 사회였다. 양반과 왕에게만 유리한 철저한 독재국가. 그것이 바로 조선이었다.

3. 사대주의 사상
  조선은 태어날때부터 명나라를 섬겼다. 그러나 그때에는 자주권이 조금은 있었는데 연산군이 물러나고 중종이신하들에 의해 왕이 되자 기반이 허약한 중종은 사대주의를 강화한다. 자신의 입지를 명나라를 통해서 굳건하게 한 것이다. 이때부터 사대주의는 심각해진다. 점점 후기로 갈수록 사대주의는 강해져서 선조에 이르러서는 조선이 망해도 왕은 중국으로 도망가면 끝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문제는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섰을 때. 청나라를 섬기자니 명나라를 버릴수가 없다. 명나라는 아버지인데 아버지를 버리는 자식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렇다고 이미 사라져버린 명나라만 찾다가 호란까지 겪은 조선은 청을 섬기자니 불효가 되고, 명을 섬기자니 청에게 터질 것 같아 고민에 빠진다. 그래서 궁궐에 몰래 사당을 하나 짓고 명나라 왕조를 추모하는 제사를 지낸다. 겉으로는 청나라를 섬기는 척하면서 자신은 명나라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미 사라져버린 명나라를 끝까지 부여잡을 수 밖에 없는 저 경직된 사고관. 만약 명을 버리면 불효가 되고, 그럼 백성들도 임금이나 아버지에게 효를 다하지 않아도 되고, 그럼 양반제와 조선의 근간이 무너지니 그들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정조가 사망하고 나라가 패망하기 까지의 과정은 또 어떤가? 서로 외세를 붙들어 왕권을 유지하려 발악을 하고, 신하들은 나라가 일본에게 넘어가도 새로운 사대를 하면 끝이다. 어짜피 중국이나 일본이나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작은 나라로서는 어쩔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오백년을 보냈다. 조선은 명과 청에게 사대하면서 안전을 도모하였고, 나라를 뺏겨서도 일본에 사대하면서 일신을 보호하였다. 조선을 과연 성리학의 나라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밖에도 가문의 이익을 위해서, 서원을 통한 학벌의 이익을 위해서 뭉쳤던 양반의 이야기 등등해서 조선시대를 선비가 다스리는 인의 정치라고 할 수 없다. 저자는 야만의 오백년이라고 하였다.

  김구선생의 백범일지에서 독재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고 하였다. 1인독재와 철학이 있는 독재. 1인 독재는 타파하기 쉽다고 했다. 그 사람만 물러나면 끝이니까. 그러나 철학이 있는 독재는 어렵다고 했다. 조선은 성리학이란 철학을 가지고 양반과 왕족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백성들 위에 군림한 독재의 시대라고 말했다.

조선은 오백년을 갈 나라가 아니었다. 임진왜란 이후에 멸망하는게 맞았다. 중국도 성리학에서 양명학으로 바뀌어 실사구시를 찾는데 임진란의 그 수모를 겪고도 다시 양반이 득세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민초들의 민의가 아쉽다. 학습된 무기력인지, 워낙 성리학이 철저하게 세뇌를 시킨건지 모르겠지만 망할 나라가 망하지 않아 백성들만 고달팠던 오백년 역사가 되었다.



2018/09/09 15:33

프로이드의 꿈의 해석을 읽고 2018

2주 동안에 한단락 한단락씩 읽은 책이다. 너무 어렵다. 잠이 안올 때 읽고 있으면 어느새 잠을 자게 하는, 꿈의 해석이라기보다는 꿈을 부르는 책이다. 읽으면서 어려웠던 이유를 몇가지 꼽자면,

 첫째, 책에서 나오는 전문적인 용어들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읽자니 내용 파악이 어려웠다. 개념에 대한 설명이 불친절하다. 용어를 무시하고 읽어나가면 같은 용어가 계속 나오고, 다른 전문 용어들이 추가되고, 점점 더 많은 전문 용어가 많아져서 그 홍수 속에 길을 잃는다.

  둘째, 이 책은 한번 책을 발행하고 나서 그 후에 증보판을 몇번 거듭하여 냈기 때문에 초판과 증보판의 내용이 섞여있어 읽는 독자가 헷갈릴 수 있다. 책을 읽는데 갑자기 프로이트가 말했다 어쩌구 저쩌구... 어, 자신이 마치 3자인것 처럼 객관화시켜 말할 수 있나? 이런 의문이 들기도 한데 정신 놓치면 순간적으로 길을 잃는다.

 셋째, 역시 번역의 문제. 열린책들의 꿈의 해석을 읽었는데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단 문장이 너무 많았다. 물론 번역자도 최선을 다해서 번역했겠지만 그게 최선이었나 싶을 때가 많았다. 원문을 내가 못보았기 때문에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단락은 번역가가 각주를 통해서라도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각설하고,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은 초판이 600부가 나왔을 때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다. 원래 1899년 11월에 나왔는데 책에는 새로운 세기인 1900년에 나온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재판을 찍기 위해서는 9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 600부도 소위 정신분석 전문가들이 책을 산 것이 아니라 일반 독자가 팔아준 것이다. 그의 책은 철저하게 외면을 당했다고 책의 뒷편 해설서에 적혀 있다.

그가 외면 받은 이유는 꿈은 하나의 현상이지 과학으로 다룰 수 있는 현상이 아니라는 편견이다. 그 당시 2000년동안 꿈에 대해서 연구한 사람들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꿈을 단지 꿈에 나타난 꿈의 내용에만 집중했지 그 이면에 있는 꿈의 숨은 뜻을 파악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그것을 프로이트가 해낸 것이다.

그가 꿈에 대해서 연구하기 시작한 이유는 히스테리 환자를 치료하면서부터이다. 질병을 치료하면서 최면요법이 효과가 있어 사용하다가 그것도 어느 부분에서는 막히게 되자 다른 방법을 찾다가 자유연상법을 발견한다. 자유연상법은 파우치라는 침대에 누워서 자기가 생각나는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하다보면 어느 순간 더이상 할 얘기가 없어진다. 거기에서 심리적 저항이 시작되는 것. 그 부분에서 깊게 들어가면 어린시절이나 소망이 억압된 이야기가 나오고 그 이야기를 본인이 말하면서 병이 치료된다는 것이다. 꿈을 해석하는 것도 억압된 소원이 무의식에 있다가 꿈의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을 도입했다고 한다.

사람의 생각은 크게 의식-전의식-무의식의 3단계를 갖는다고 말한다. 무의식은 욕망이 튀어나오는 단계로 결코 의식으로 삐져나오면 안되는 단계이다. 만약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곧장 올라오면 인간과 짐승이 다를게 없게된다. 그래서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전의식을 두어서 무의식이 의식으로 나올 때 이를 적절히 통제하고 의식이 무의식을 받아들일 수 있게 전의식이 가공을 하거나 통제를 한다는 것이다. 꿈을 꾼다는 것 역시 무의식에서 나온 소망 욕구가 의식으로 삐져나오기 전에 전의식이 꿈의 내용을 억압하고 압축하고 통제해서 의식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든 다음에 그것을 꿈이란 형태로 내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꿈은 밑도 끝고 없고 이야기가 중구난방이며 도중에 끊기기도 한다. 그래서 꿈을 그대로 가지고 해석하면 안된다. 프로이트는 꿈을 해석하는 것을 탐정에 비유했다. 사건이 난 장소에 가서 범인이 남긴 증거를 수집하여 그것들의 의미를 하나하나 맞춰 사건을 해결하는 것처럼 꿈에서 제시된 내용을 통해서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하나하나 해석하여 전체적인 꿈의 내용을 해석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꿈이 작업하는 것을 크게 4개로 분류하였다. 압축, 전위, 묘사, 이차가공이다. 꿈은 낮에 있었던 단순한 일상을 무의식에 있던 소망과 연결하고, 이러한 몇가지 소망을 하나로 묶어서 꿈으로 제시한다. 업축과 전위가 들어가는 것이다. 차마 소망이 근친상간과 같은 경우에는 이차가공이 들어가기도 한다. 그래서 꿈을 해석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런 꿈이라는 하나의 현상을 보편적인 학술언어로 제시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 2000년 동안 꿈이 있었으나 그것은 단지 주술적인 내용이나 미래 예언에 불과하다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꿈이 형성되는 원리를 보편적인 언어로 제공한 그는 대단한 공로를 세운 것이 틀림없다.

그가 책을 낸 이후에 정신분석학은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요즘에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무시하고 심리학이 신경학으로 넘어가 뉴런을 연구하고, 시냅스를 연구하고 있지만 그 바탕에는 프로이트로부터 시작하는 기본 바탕이 있었기에 후대의 심리학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로 인해서 우리는 프로이트에게 빚졌다고 할 수 있다.

미셀 옹프레가 우상의 추락이라는 책을 냈다. 프로이트 비평서다. 아직 읽어보진 못했는데 거기에서 프로이트가 엄청 까인다. 너무 성적인 이야기를 다루었다거나, 실험 결과를 조작했다고 한다. 언젠가 그 책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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