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18 20:12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2019

외딴방이 재미있어 엄마를 부탁해란 책도 읽었다. 옛날에 정말 붐이 일었던 책이다. 외국어로도 번역되어 세계에서도 호평을 받은 작품으로 기억한다. 내용이 통속적일 것 같아 읽지 않았는데 외딴방을 읽고 나서 한번 읽어보았다.

서울역에서 어머니를 잃어버렸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울역에서 자식들보고 오지 말라 하고 지하철을 타러 가다가 아버지만 훌쩍 타고 어머니는 타지 못한 채 지하철이 출발을 한 것이다. 500만원 사례금도 걸고 전단지도 만들어 뿌린다. 그리고 목격자들의 증언이 전화를 타고 제보된다. 어떤 남루한 할머니가 파란 슬리퍼를 신고 여기에 있는 모습을 봤다, 그녀의 엄지발가락이 짓물러 고름이 졌다, 쓰레기통의 김밥을 먹고 있드라.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빨리 찾아야 하는데 흔적이 없다. 그리고 어머니의 삶을 각자 추억한다.

소설가가 된 딸은 평소에 얼마나 엄마를 쌀쌀맞게 대했는지에 대해서 추억하고, 남편은 아내와 결혼할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그녀를 따스하게 대한 적이 단 한번도 없음을 깨닫는다. 아들은 바람난 아버지 대신에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란 자신이 결국 어머니 꿈을 이뤄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엄마가 화자로 등장하여 이은규란 자신이 남편 몰래 정신적으로 의지했던 남자에 대해서 얘기한다.

엄마가 첫째 딸에게 부탁했던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에서 장미묵주를 사다달라는 꿈은 바티칸시국에 여행간 딸이 거기에서 묵주를 사가지고 오다가 돌아가신 예수를 끌어앉고 있는 성모상인 피에타를 보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결국 엄마를 찾지 못한거다. 작가가 참 영리하게 글을 썼다는 생각이 든다. 딸과 아들, 남편이 아내와 엄마에게 갖게 될 감정을 각자의 관점에서 잘 캐치해서 썼다. 그러면서도 엄마를 찾지 못한 상황들을 보여주면서 그녀가 지금도 어디서 고생하고 있다는 증언들을 등장시켜 독자를 가슴졸이게 한다. 계속 책에 집중시킬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소설의 구조를 잘 짰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시대의 평범한 어머니에 대해 잘 말해줬고, 평소 자식들과 부모와의 관계도 잘 묘사했다. 읽으면서 나의 모습이란 생각이 안들 수 없고, 만약 내 엄마가 저렇게 잃어버리면 난 얼마나 죄책감을 가질까란 생각이 안들 수 없게 만드는 책이다. 논리적 허점도 있다. 서울역에서 잃어버린 엄마가 자식들이 살았던 서울의 각 지역을 걸어서 갔다는 것도 그렇고, 서울의 치안이 어떻길래 길거리를 저런 모습으로 헤매는 노인을 그냥 지나친다는 말인가? 누가 유괴했다면 몰라도 저런 모습으로 거리를 돌아다니는데 경찰이나 사람들이 신고 한건 없었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이 소설이 나온지 한 십년 지났는데 지금 읽어도 가슴을 후빌 내용들이 많다. 사람들은 십년 전이나 십년 후나 부모에 대한 감정은 거의 비슷할 것일거다. 자식들이 크면 슬쩍 한번 읽어보라고 주면 아마 며칠간은 부모에게, 최소한은 엄마에게는 잘할 책 같다. 풍경이 있던 자리에 나왔던 사건도 나오고, 외딴 방에서 나왔던 장면도 나온다. 연관이 있다. 그나저나 치매에 걸린 엄마가 빨리 가족 품에 들어갔으면 좋겠다.

2019/08/18 19:50

외딴 방을 읽고 2019

신경숙의 자전적 소설이다. 16세부터 19세까지 자신의 인생에서 힘들었던 시기를 사실과 허구를 섞어가면서 만든 작품이다. 읽으면서 인생을 참 치열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어려서 너무 가난하여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 부모님께서 자식을 공부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는데 오빠들이 많아서 그녀까지는 부담이 됐던 것이다. 그래서 중학교 졸업을 하고 집에서 놀고 있는데 서울에 있던 큰오빠가 그녀를 서울로 오라고 한다. 서울에서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야학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서울로 외사촌과 함께 상경한다.

처음 6개월간은 실습기간이었다. 납땜하는 것부터 해서 공장에서 해야 할 일들을 배웠다. 그리고 15명 모집하는 야학에 시험을 쳐서 그녀가 1등, 외사촌이 2등을 해서 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집은 방이 하나밖에 없는 외딴방이다. 거기서 첫째오빠와 그녀, 그리고 외사촌이 함께 기거한다. 우울한 환경이다. 아침에 출근하여 퇴근까지 일하고, 그 후에는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집에 돌아와서 저녁상 차리고, 먹고, 자고, 다시 일어나서 아침상 차리는 생활을 3년간 한다. 32세의 신경숙이 16세의 신경숙에게 참 장하다고 말한다. 그 세월을 어떻게 견뎠는지 말이다.

그녀가 작가로 성공한 후에 하계숙이란 사람에게 전화가 온다. 자신을 그때 공부했던 친구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성공을 진심으로 칭찬한다. 그런데 넌 우리 얘기는 소설로 쓰지 않더라. 내가 너의 책을 거의 다 읽어 봤는데 우리 얘기는 없더라구. 너도 혹시 우리가 생활했던 그 추억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아니니?라는 그녀의 얘기. 훅 들어오는 얘기다.

그녀는 학교를 다니다가 한 일주일동안 결석을 했다. 왜 다녀야하는지 모르겠다. 자신은 부기도 배우기 싫고, 주산도 싫다. 그냥 책이나 쭉 읽었으면 좋겠는데 그런건 가르쳐주지 않고 있다. 있어야 할 의미를 찾지 못한거다. 외사촌이 와서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신다고 알려준다. 오신 선생님은 학교에 오라 말한다. 그리고 반성문을 써오라 한다. 그녀는 수십장의 반성문을 써간다. 그건 반성문이 아니다. 자신이 왜 다니기 싫어하는지에 대한 투덜거림과 자신은 글을 쓰고 싶다는 소망과, 여기서 안되면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얘기를 쓴거다. 그 반성문을 읽던 최홍이 선생님은 말한다. "경숙이, 너 소설가가 되야겠구나." 그 말이 그녀에게 박힌다. 그래서 그녀는 대학을 가고 싶어한다. 문창과에 가서 공부를 하고 소설가가 되고 싶은 꿈이 생긴 것이다.

엄중한 시대였다. 약한 그녀들에게 너무 가혹한 시련들이 많았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중에서 노조에 가입하면 학교에서 쫓아낸다는 것이다. 공부를 하려면 노조에 가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녀와 외사촌은 노조에서 탈퇴한다. 야간 작업 거부에 들어갔는데 그녀 둘은 거기에 참여하지 못하고 남아서 아무 할 일없이 컨베잉어에 서 있다. 다음날 출근한 다른 사람들의 눈치가 보인다. 자신에게 너무 잘 대해줬던 노조위원장을 배반한 것 같아 그가 나타나면 피하기 급급하다. 세상은 그녀에게 수치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공부하고픈 마음을 이용한 수치. YH사태가 터지고, 노조위원들은 알몸으로 옥상에서 투쟁하다 진입한 경찰에게 그대로 끌려간다. 

그러다가 박정희가 죽고 교장은 조회시간에 펑펑 운다. 왜 우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서울의 봄이 지나가고 전두환이 장갑차를 밀고 서울로 진입한다. 그리고 공장은 또다시 엄혹한 시대가 된다. 노동력 착취는 심해지고, 그녀는 일년동안 그렇게 일해도 그 외딴방을 벗어날 돈을 벌지 못한다. 전두환은 거리에 문신을 했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연탄불을 피워서 파는 아저씨를 삼청교육대에 데리고 가 버렸다. 어린 소녀들이 몰라도 될 인생의 쓴 면이 너무 가혹하게 일상을 후벼판다.

그녀가 자신의 그 시절을 힘겹게 추억하는 이유는 희재란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친구 때문이다. 외딴방 건물에 같이 살아 친해졌는데 어느날 남자를 데려온다. 그리고 동거하는 그들.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첫째오빠. 알콩달콩하던 희재네 커플은 깨지고 남자가 떠나간다. 그리고 배가 불러온다. 아이를 낳고 싶다는 그녀와 아이를 지우라는 그. 합의가 안되고 남자는 떠난다. 다시 희재네 놀라가다 어느날 희재가 열쇠를 맡기고 일하고 돌아오면 자기 집 좀 잠궈달라고 한다. 그리고 약속을 지키는 그녀. 집에 다녀오겠다는 희재는 오지를 않고 희재의 남자친구가 그녀 집에 왔다가 희재가 죽어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16살의 그녀는 큰 충격을 받는다. 문을 잠그기 전에 한번 더 방 안을 살폈더라면 그녀를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란 마음과 희재의 죽음에 자신이 동참했다는 죄의식.

하계숙이 말했다. 왜 우리 얘기를 쓰지 않냐고. 너희들 때문이 아니다. 희재의 기억을 소환하기가 너무 어려웠던 것이다.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다시 용기를 내서 소설로 옮긴다. 이 작업을 해야만 그녀는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해냈다.

외딴방을 읽고 생각난 책은 '그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란 박원서의 자전적 소설이다. 그녀는 6.25가 남긴 상흔때문에 괴로워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시대의 잘못으로 가족과 자신이 입은 피해 때문에 괴로운 것을 소설로 써서 치유받았다. 신경숙도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시대가 무법하여 그 어리고 약한 소녀를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던 시대 때문에 괴로웠던 것을 소설로 써서 치유받고 있다. 그리고 전태일평전도 생각난다. 그도 그 무법한 세상을 바꾸고자 몸을 불살랐다. 마음이 여리고 가진 것 없는 소년 소녀들이 참 어렵게 살아간 시대였다. 검은색 고급 리무진을 끌고 와서 37가구의 외딴방 방세를 꼬박꼬박 받아가던 건물주. 그녀는 10원도 허투루 깎아주지 않았고, 20원이 없어 100원을 주면 거스름돈을 상대방이 요구하지 않으면 주지 않았다.

신경숙의 외딴방이 이런 내용인지는 몰랐다. 모르고 읽으니 내용이 확 들어온다. 재미있었다. 그리고 반성도 되었다. 나는 그렇게 삶을 치열하게 살고 있는가에 대한 반성. 큰오빠는 방위가 되어 돈을 벌지 못하자 가발을 쓰고 새벽반과 야간반 학원강사를 해서 돈을 보탠다. 대학에 다닐 때는 낮엔 동사무소에 다니고 밤엔 대학을 다니며 공부를 한다. 글을 쓰고 싶던 셋째오빠는 검사가 되겠다고 하더니 시대의 불화에 맞서 싸운다. 그리고 그녀는 서울예전 문창과에 들어간다. 그런 치열함이 나에겐 있었나? 보다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가야 할 것 같다.

2019/08/16 19:07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를 읽고 2019

이 책은 한국의 유명한 소설가의 작품을 한쪽은 한글, 한쪽은 영어로 번역해 놓은 책이다. 모처럼 필사라는 것을 하려고 이 책을 골라 한번 쭉 써봤다. 단편소설이라 내용도 길지 않고 서정적이라 쓰면서도 즐거운 노동이 되었다.

감정이 너무 과잉되게 표현되어 읽으면서 힘들 때도 있었다. 신경숙 작가의 초기작품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감정이 과잉된 표현들은 초기 작가들이 흔히 하는 실수일테니... 물론 감정 과잉을 의도한 부분도 있었을거란 생각이다. 소설이 이성보다는 감성에 타킷을 두었으니까...

주인공이 40대 유부남과 연애를 한다. 그는 가정을 버리고 그녀와 함께 외국으로 나가자고 한다. 고향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애인에게 부치지 못하는 편지를 쓴다. 그 내용이 이 글이다.

주인공이 어릴 적 아버지께서 바람을 피워 한 여인이 집으로 들어오고, 어머니는 집을 나가버렸다. 어릴 적 주인공은 농촌에서는 볼 수 없던 그녀의 뽀얀 피부와 향기로운 냄새에 취한다. 그리고 밥이며, 반찬이며 농촌에서 강팍하게 살던 그 시절엔 생각도 못할 다양한 음식들을 내보이는 그녀에게 서서히 동화된다. 어린 그녀가 새엄마를 좋아한 이유는 바로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줬던 것도 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존재감이 없었던 그당시 소녀에게 자신을 위해 마음 써주던 새엄마에게 호감을 갖는다.

그러나 새엄마 때문에 진짜 엄마가 떠났다. 큰오빠는 새엄마가 들어온 날, 밥 먹기를 거부하고, 동생들에게도 단식을 종용한다. 새로 들어온 아줌마는 악마다. 그녀때문에 우리 엄마가 집을 나갔다. 엄마가 집에 돌아오기 위해서는 새엄마가 집을 나가야 한다. 그리고 동생들을 시켜서 새엄마 가슴을 무던히도 괴롭힌다.

새엄마가 들어온지 열흘만에 집을 나가는데 그 이유는 어머니께서 집으로 와서 갓 태어난 막내에게 젖을 먹이고, 단추를 잘못 잠근 자신의 옷을 바르게 입혀주고 다시 나가는 모습을 본 이후였다. 그 다음날 새엄마는 집을 나간다. 새엄마는 자주 칫솔질을 했는데 그녀가 칫솔질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봤던 주인공은 그녀가 집을 나가면서 자신의 칫솔을 두고 떠난 것을 알고, 그것을 주기 위해서 쫓아간다. 그녀의 치맛단을 잡자 돌아서는 새엄마는 눈물로 화장이 다 뭉개지고 있었다. 칫솔을 주는 주인공에게 손을 꼭 잡으며 너는 나처럼 살지 마라.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간다.

마을의 점촌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젊었을 적에 다가오는 자전거를 피하다가 굴러 떨어져 2년을 앓는 사이에 남편이 웬 여자를 데려왔다. 2년동안 누워있던 그녀는 한쪽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살이 쪄서 뚱뚱해지고 말았다. 집에서 나와 마을 끝에 집 하나를 마련하고 살았는데 어머니랑 같이 그 집에 갈 때마다 그녀는 성치않은 다리로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살을 빼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죽을 때까지 남편이 찾지 않았고, 인생은 추웠으나 따뜻한 날에 갔다고 넋두리하는 어머니의 얘길 듣는다. 어머니께선 왜 연배가 다른 점촌할머니와 친하게 지냈을까? 그녀의 마음을 누구보다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의 애인이 고향에 찾아온다. 외국으로 가자고 한다. 갈 수 없다고 주인공은 말한다. 며칠까지 도시로 오라고 말하며 애인은 떠나고 그녀는 그날 도시로 가지 않는다. 그리고 한달이 지나 그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본다. 은선아, 아빠 전화왔다고 말씀드려라. 딸의 이름은 은선이였고, 그 가정은 평화로웠다. 그리고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고향에서 눈이 멀게 태어난 수송아지를 키우면서, 까치가 낳은 새끼들이 날개짓을 할 때쯤이면 은선이란 이름에 가슴이 무너지지 않을 희망을 품으며 글이 끝난다.

짧은 단편소설인데 줄거리를 쓰고 보니 길어졌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젊은 여성들이 읽으면 혹할 얘기였다. 마무리도 훈훈하다. 어짜피 다른 사람의 남자를 사랑하는 것은 옳지 못한 법이니까 가슴이 아파도 내려놓는 것이 좋은 것이다. 새엄마 이야기는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주인공이 어머니를 유심히 관찰했다면 그녀 역시 새엄마 못지 않을 가슴앓이가 있을텐데 그런 점이 빠져서 새엄마의 감정에 쉽게 이입되었을 수도 있다.

젊었을 때 읽었던 소설이다. 그때 문지사에서 풍금이 있던 자리란 소설집으로 나왔었는데 그 책에 수록된 다른 작품들은 다 까먹고, 이 작품만 기억에 남았다. 남은 것도 줄거리가 기억나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서정적인 느낌만 남았었다. 필사를 해야하는데 너무 지루한 것은 싫어서 이 작품을 쓰면서 문학적 감수성을 좀 키우고 싶었는데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2019/08/13 14:39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2019

체코의 잘나가는 의사 토마시는 계획에 없던 한 시골마을을 방문하여 테레자를 만난다. 알렝드보통이 썼던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나왔던 만남의 우연이 펼쳐진다. 자신이 담당하지도 않았던 환자를 만나기 위해 거길 갔고, 하필 그 주점에 들렀으며, 하필 거기에 그녀가 있었고, 하필 그녀는 그런 대사를 해서 그렇게 그들은 만났다. 수많은 우연의 연속이 사랑이라면 토마시와 테레자는 만날 수 밖에 없는 운명인가 보다.

6호실에 머물고 있던 토마시에게 테레자가 했던 대사. '당신은 6호실에 머물고, 전 6시에 끝나요...' 대담한 대사다. 그러나 한시간밖에 시간이 없어 프라하로 돌아온 토마시에게 갑자기 찾아온 그녀. 손에는 안나카레리나를 들고... 그녀가 가지고 들어온 그 책은 그의 방에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 같은 것이었나 보다.

토마시는 또다른 연인 사비나에게 테레자의 직업알선을 부탁하고 테레자는 어느 언론사의 사진기자로 취직을 한다. 그리고 그때 벌어진 소련의 체코 침공. 드부체코를 물러나게 하고, 체코를 손아귀에 논 소련에 맞서 일어난 시민의 혁명, 그리고 강경한 진압. 프라하의 봄이 온 것이다.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이다. 4.19, 5.18, 6월항쟁 등 우리의 역사가 그러했듯이 그네들 역사 또한 그러했다.

테레자는 자신이 사진기자이기에 그 소명에 맞게 많은 사진을 찍고, 다른나라 사진기자들에게 필름통을 주어 체코의 상황을 알려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그녀가 찍은 사진은 소련에 의해서 주모자를 색출하는 증거자료가 되는 아이러니. 그리고 그들은 체코를 떠나 스위스로 간다.

스위스에 먼저 도착한 사비나는 프란츠란 대학교수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유부남인 프란츠는 자신의 부인과 이혼하고 사비나와 결혼하려 그녀의 아파트를 찾지만 이를 알고 있던 그녀는 도망치듯 스위스를 떠난다.

스위스에서도 플레이보이 기질을 마음껏 발휘하는 토마시를 견디지 못하고 다시 체코로 돌아오는 테레자. 그녀가 떠나자 이틀동안 행복하고, 다시 그녀를 찾던 토마시도 역시 체코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는 의사 생활을 할 수 없다. 테레자도 사진기자로 취업이 불가능하다. 유리닦는 청소부로 살아가는 토마시와 주점의 웨이트리스로 취직한 테레자. 거기에서도 경찰들은 계속 그녀를 감시하고 이를 견디다 못해 다시 농촌으로 향하는 두 부부. 그리고 브레이크가 고장난 트럭이 전도되어 그 부부는 죽음을 맞이한다.

인간은 한번 밖에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실수를 했다고 해서 다시 돌아가 자신의 행동을 수정할 수 없는 것이다. 니체가 말한 영원회귀는 인간은 죽어도 다시 살아나 똑같은 인생을 되풀이한다고 했다. 그 말이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만약 그대로 된다면 내가 오늘 한 행동에 얼마나 많은 책임이 따를까? 니체의 영원회귀에 나오는 인생은 책임이 따르는 인생을 비유하고, 존재의 무거움에 대해서 말한다. 테레자의 삶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을 한번밖에 살지 못한다. 한번 가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있는 것이다. 이는 토마시의 즉흥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다.

테레자는 직장도 없고, 어릴적부터 어머니로 부터 정신적 가해를 당했으며, 몸도 왜소하고 나약하다. 토마시는 외과의사에, 키도 크고, 모든 여성들에게 사랑을 받을 매력이 있으며, 신체 또한 강건하다. 테레자는 토마시를 사랑하지만 그를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자신의 나약함밖에 없었고, 토마시는 다른 여인들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여 하룻밤을 재우지 않았지만 테레자가 온 첫날 그녀를 방에 재운다. 그것은 동정, 연민과 같은 감정이다. 스위스에서 체코로 돌아온 테레자를 만나기 위해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체코로 돌아왔다. 돌아갈 때 그는 묻는다. 꼭 그래야만 했는가?(Muss es sein?), 꼭 그래야만 했다.(Es muss sein!) 모든 것을 포기하고 너는 꼭 프라하로 돌아가야 하는가? 꼭 그래야만 했다. 멋진 문장이다. 한없이 가볍던 토마시의 정체성이 책임감을 동반한 사랑으로 존재의 무거움을 기꺼이 포용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이 있다면 마지막 챕터는 읽지 않기 바란다. 가슴이 아프다. 토마시와 테레자가 키우는 카레닌이 암에 걸려 죽는 과정인데 읽는 과정이 힘들다. 개든 사람이든 인생은 한번이고, 지나가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남아있는 자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은 추억과 연민뿐.

재미없을 줄 알았는데 재미있었다. 좋은 문장도 많이 나온다. 가장 좋았던 문장은 베토벤의 목소리로 토마시가 했던 말. 꼭 그래야만 했다. 멋있는 문장이다.

2019/08/06 16:55

헤밍웨이 단편선 1,2권을 읽고 2019

노인과 바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등 수많은 역작을 남긴 헤밍웨이가 처음엔 시로 등단을 하였으나 천성적으로 그는 시인에 걸맞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단편과 장편들을 많이 썼는데 민음사에서 그의 작품 중에서 유명한 것들을 골라 1,2권으로 만들어 내놓게 되었다. 2권 뒤에 있는 외대 김욱동 교수가 쓴 작품 해설을 읽어보니 그가 쓴 단편은 단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편을 쓸 때 그 소재로 사용했다고 한다. 단편에서 쓴 얘기를 장편으로 불러와서 더 살을 붙이고, 뼈대를 이뤄 썼다는 것이다.

예로 든 작품이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란 장편을 보면 낚시 장면이 나오는데, 이 소재는 '심장이 두개인 큰 강'이란 단편에서 모티브를 가져왔고, 투우사에 관한 얘기는 '세계의 수도'나 '패배하지 않는 사람들'이란 투우사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

또한 단편은 단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단편들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계속 다른 단편에서도 소환되었다. 그리하여 어린시절, 젊은 시절, 노년 시절의 주인공의 이야기를 단편으로 짧게 쓰고, 그것들을 이어보면 한 인간의 일생이 나온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작가다.

헤밍웨이는 모두 4번 결혼을 했는데 그중 둘째 부인인 폴린 파이퍼가 가장 부유한 여인이라 했다. 그녀는 파리의 '보그'지에서 근무했던 패션 작가인데, 그녀와 결혼하고 그는 미국에서도 부유층만이 산다는 플로리다 남단 키웨스트 섬으로 이주해서 호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선박을 구입하여 바다 낚시를 즐겼고, 스페인에서 투우 경기 관람하는 것도 좋아했다고 한다. 그렇게 10년동안 호화롭게 살면서 자신의 재능을 낭비하다가 후에 작품을 쓰려는 열정이 사라져 다시 글을 쓰는데 아주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글쓰는 재능이 제대로 회복되지 못한 절망감에 스스로 자살을 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의 소설이 빙산이론이라고 해서 작가가 이야기하고픈 주제를 숨기고 겉으로는 살짝 암시만 하고 내려놓은 작품들이 많아 한번 읽어보면 '이게 뭐야?'란 밋밋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작품들이 많다. '인디언 부락'을 읽어보면 닉이란 아이가 아버지인 의사를 따라 출산을 하는 어떤 인디언 가정에 방문한다. 쉽게 끝날 것 같았던 출산이 난산이 되어가고, 어쩔 수 없이 제왕절개로 아이를 꺼낸다. 읽으면서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그 여인은 죽을까, 아이는 살릴 수 있을까? 그러나 정작 황당한 것은 아내의 비명을 듣다못한 남편이 스스로 자살을 한 것이다. 아이도 아내도 살았는데 남편이 죽다니... 정말 황당한 결말이다. 작품 해설을 읽어보지 못하면 무슨 얘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재미있게 읽은 작품은 '심장이 두개인 큰 강'이다. 마치 브레드피트가 나왔던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의 송어 낚시가 생각난다. 전쟁에서 돌아온 주인공이 비박을 하면서, 며칠동안 강가에 머물면서, 송어를 잡는 과정을 아주 디테일하게 글로 담았다. 이 작품이 재미있었던 것은 내가 옆에서 주인공이 하는 모든 일들을 보는 것처럼 자세하게 묘사를 해 놓았다는 것이다. 뒤의 작품 해설은 이 작품이 전쟁에서 돌아온 주인공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송어 낚시를 통해서 치유해가는 과정을 소설로 옮긴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난 빙산이론 때문인지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역시 아는만큼 보인는 법이다.

헤밍웨이의 단편은 짧고 강렬한 문장으로 되어 있어 읽기가 쉽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빙산이론 때문인지 읽고 나서도 도대체 왜 작가가 이 작품을 썼는지,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오헨리처럼 끝에 가서 상상 못한 반전을 이루는 작품은 박하처럼 느낌이 확 오는데, 헤밍웨이는 한 작품이 끝나도 이게 왜 이렇게 끝나는지, 뒤에 더 이야기가 계속 되어야 할 것 같은데 그냥 훅 끝나서 찜찜한 마음이 계속 남았다. 그러다 보니 읽다가 지쳐 갔다. 그러나 헤밍웨이의 장편을 정독한 사람이라면 단편 소설 하나하나를 읽으면서 장편소설에서 나왔던 장면들이 단편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이 반가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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