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6 13:42

내게 무해한 사람을 읽고 2020

최은영의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이다. 중편과 단편집이 몇개 실려 있다. 최은영의 소설은 처음에 쇼코의 미소라는 소설을 읽었었다. 그때 그 소설을 읽었을 때의 느낌은 뭐랄까, 마음씨 착한 여성이, 감성도 여리고, 예민한 면이 있는데,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이 보통 사람보다 세심하고, 여리고, 착한, 그러면서도 통찰이 있는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바스락거리는 낙엽의 느낌이랄까!!!

이 소설도 그런 느낌이 많았다. 그녀의 섬세한 감성이 잘 나타났고, 그러면서도 세상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듯한 느낌이다. 무엇보다 옛날에는 말도 꺼내지 못했던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가 두편인가 세편이 나온다.

세상에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 표준을 벗어난 사람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나 관습에 얼마나 개인이 상처받는지가 잘 나타나 있다. '고백'이란 단편에서는 진희라는 친구가 동성애임을 밝히자 주나는 진희에게 상처주는 말을 해서 진희가 자살을 하고, 그 후로 주나는 나를 피하고 졸업하고 나서 다시 그녀를 만났을 때 주나가 했던 말은, 네가 진희에게 보였던 그 혐오스러웠던 시선을 잊을수가 없다고 했던 말. 꼭 말은 아니라도 시선이나 표정 역시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알려주는 단편도 좋았다.

601, 602는 또 어떤가? 가정폭력이란 주제 아래 가부장적 사회에서 딸있는 가정의 엄마가 겪였고, 그 딸이 겪었던 폭력을 너무 사실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아치디에서도 좋았다. 맨 마지막에 나오는 중편 소설인데 세상에 얽매이지 마라, 한발짝 벗어나면 나의 일상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그리고 세상은 한가지 방향으로만 뻗어있는 가지가 아니라 다른 선택을 하면 또다른 인생의 길이 있다는 성장소설이었다.

감성이 풍부하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도 좋고, 그러면서도 일상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지며 평범한 사람들이 스쳐지나갈 일들을 딱 캐치해서 그 부조리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그녀의 필체나 시각도 좋다. 관계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루고 있고, 심리학을 배운 사람들은 이건 강박증, 이건 편집증 등등 주인공이 갖고 있는 심리적 방어기제를 찾아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편안하게 읽을 소설은 아니다. 문제의식이 있고 그 문제의식을 잘 풀어나간 것 같다.

2020/10/21 16:01

포노 사피엔스를 읽고 2020

책 제목이 나온 그대로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현재 밀레니얼 세대를 일컫는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새로운 세대의 등장과 우리 미래의 변화에 대한 예언 등등이 적혀 있다.

내용은 뻔하다. 구한말 시대의 조류를 타지 못했던 조선과 청나라는 멸망하고, 그 시류를 제대로 탄 일제는 패권국가가 되었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우리의 의식도 바뀌어야한다는 것이다.

먼저 새로운 문명을 만든 잡스. 전화기에 인터넷과 컴퓨터 기능을 접목시켰다. 무엇보다 대단한 건 누구나 앱을 만들어서 자유롭게 상업활동이 가능하게 만든 앱 생태계를 만든 것. 그리하여 다양한 앱들이 나오게 되고, 이 앱들은 스마트폰의 발전을 비약시켰다.

그리하여 현재, 은행은 점포 수를 줄이게 된다. 사람들이 앱을 사용해서 은행일을 처리하지 굳이 은행지점에 방문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버나 에어비엔비와 같은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하는 회사가 나와 기존의 질서에 도전장을 내민다. 둘은 갈등하나 결국 기존의 질서는 무너지게 되어 있다.

왜냐. 소비자가 원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처음 인터넷뱅킹을 시작했을 때 혹시 자신의 계좌에 있는 돈들이 모두 해킹당하면 어떡하냐 두려웠으나 한두번 사용하고, 그 편리성을 익히면 다시는 지점을 방문하지 않는다. 결재도 스마트폰으로 하고, 대화도 스마트폰으로 한다.  일상이 변한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누가 하라고 강제한 것이 아니다. 소비자들이 스스로 선택해서 바꾼 것이다. 이것이 무섭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저자는 새로운 세대는 스마트폰이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에 한국이 빨리 이들의 니즈를 파악하여 새로운 경제동력을 이들로부터 창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창의성과 혁신이 중요하고, 더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그 바탕이 되는 사람에 대한 연구가 빠지면 안되기 때문이다.

뭐 이런저런 사례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책 한권의 분량으로 채워 넣었다. 공감가는 이야기도 있고, 공감가지 않는 이야기도 있다. 시대는 변하고 있다는 것은 공감하지만, 세계에서 1-2위를 달리는 성공사례를 일반화시키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그쪽이 성공했으니, 앞으로 이렇게 변할 것이니 빨리 태세전환 하자는 것은 좋으나 아직 어떻게 바뀔지도 잘 모르는데 쉽게 포지션을 잡을 수는 없다. 좀 더 긴 안목이 필요한 것 같다.

어쩌면 이 이야기도 한물간 옛타령이 되었다. 이런 레퍼토리는 그동안 많이 있어왔다. 지금까지 항상 한국은 위기였지만 지금은 반도체나 스마트폰, 통신기술 등 세계에서 1,2등을 석권하며 우리나라를 선진국 대열에 이끌게 한 기업도 즐비하다. 지금도 위기라고 말하는데 과연 지금이 위기인지, 아니면 바꾸기 위해서 공포를 조장하는 설레발인지 잘 모르겠다.

2020/10/08 15:53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을 읽고 2020

마당깊은 집을 읽었다. 아니 필사를 했다. 거의 6개월이 걸렸다. 그렇게 많이 걸린 이유는 도중에 일이 많아서 제대로 필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 연휴에 몰아서 썼다. 하루에 10장씩 썼던 것 같다. 재미있었다. 처음엔 지루했는데 갈수록 이야기가 재미있어 필사하는 재미가 있었다.

때는 6.25를 끝난지 1,2년이 지난 후다. 주인공 길남이는 홀어머니 밑에서 가정이 가난해 어머니랑 같이 살지 못하고, 외척에 맡겨졌다 가세가 조금 펴자 대구에 있는 마당깊은 집으로 온다.

여기 집이 특이한게 마당깊다는 얘기는 다른말로 홍수가 나면 물이 쉽게 찬다는 얘기다. 아래채는 가난한 네가구가 모여 살고, 윗채는 일제시대에도 잘 나갔다는 자본가가 산다. 위치상 정확하게 서열이 나뉜다.

아래 채 사람들은 때론 돕고, 때론 이기적이지만 어느날 밤 홍수가 엄청 나서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뚝을 쌓아 물이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은 것을 계기로 서로 단결한다.

어머니는 나에게 돈을 주며 신문을 사다가 신문 팔이를 시켰다. 중학교 입학은 시기를 놓쳐서 1년 후에 보내준다고 했다. 나는 한주라는 친구를 만나 신문팔이를 하다 그의 소개로 대구일보 신문배달 자리를 얻어 신문 배달을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 한다.

평양댁네는 이북에서 월남했는데 똑똑한 형제와 딸 하나를 두고 있다.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데 큰 아들 정태씨가 자본주의의 모순을 느끼다가 옆집에 살던 김천댁과 같이 월북을 기도하다 휴전선에서 들켜 20년형을 선도받고 복역한다. 그리고 그는 만기 출소 후에도 사회안전법이란 악법에 걸려 죽을 때까지 세상에 나오지 못한다. 가족들은 그의 월북 기도 사건때문에 큰 곤욕을 겪는다.

경기댁은 치과의사 아들과 미군 피엑스에 근무하는 딸이 있는데 오지랖이 넓고 아들은 부잣집 외동딸과 결혼하고, 딸은 미국 대위를 윗채 파티장에서 만나 그와 결혼하여 미국으로 떠난다.

상이군인인 준호아버지는 한쪽팔을 전쟁터에서 잃었고 제대 후에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아내와 함께 억척스럽게 일한다. 그네 가족은 후에 자기 건물을 갖고 책방을 운영한다.

김천댁네는 남편이 사상이 불순한지 경찰서 형사가 계속 그녀를 감시하고 있는데 얼굴에 상처가 있는 자가 그녀를 만나기 위해 온 모습을 주인공 길남이 발견한다. 후에 김천댁을 이사가면서 정태씨와 함께 월북을 기도하여 그녀는 성공한다. 얼굴에 상처가 있는 자가 월북 루트를 알려주는데 그 역시 후에 간첩 혐의로 체포된다.

주인공인 나는 1년동안 신문배달에, 장작패기에, 이사갈 땐 이삿짐 나르기에 굳은 일을 혼자서 도맡아 하면서 늘 배가 고팠다. 그러다가 윗채에서 파티가 열리는 모습을 구경하다 어머니께 혼나고 가출을 한다. 이틀동안 밖에서 꼬박 지새다 들어간 집에서는 아무런 말씀도 없는 어머니와 자신에게만 고깃국이 나왔다.

다들 어렵게 살았던 시절이다. 전쟁 후의 트라우마도 엄청나서 상이군인인 준호아버지는 밤마다 전쟁의 악몽을 꾸고, 부모님이 모두 전쟁통에 돌아가신 이모라 불렀던 젊은 기생은 자살을 한다. 고향을 떠나 혈혈단신으로 남한에 온 주씨아저씨는 가는 곳마다 자신의 고향을 말하면서 가족이나 지인들을 찾는다.

먹을 건 더 없었다. 막내동생 길수는 전쟁 통에 태어나는 통에 제대로 식사를 못해 성장이 느렸고, 결국 어린 날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지게에 둘둘 말아 이름모를 야산에 묻었다. 그러나 윗채의 노마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상여에 수천송이의 국화를 꽂고 골목마다 상주를 찾아온 자동차들로 꽉꽉 들어찼다.

평소에 읽는 것을 좋아했던 길남은 커서 소설가가 되었고, 출판사를 다니다가 대구에 내려와 평양댁 작은 아들 민이를 만난다. 그는 원래 서울대 법대를 꿈꿨던 수재였으나 자기 형 때문에 법대를 포기하고, 의대에 가서 병원을 낸 것이다. 그로부터 준호네 가족과 평양댁네 가족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가 상당히 엄하다. 봐주는 것이 없다. 12월에 김장을 하는데 물장수에 물을 사서 배추를 씼는 것이 아니라 길남이에게 중국인학교에 가서 물을 길어오라 한다. 그 추위에 손이 꽝꽝 언다. 윗채는 주씨 아저씨를 고용하여 겨울을 보낼 장작을 모두 사서 패도록 하는데 어머니는 길남에게 보고 배워서 하라고 한다. 서럽다. 누나와 동생은 학교에 가는데 나는 학교도 안보내주고, 장작이나 패라고 하니 말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상당 부분 길남이에게 의지했다. 단지 어린 큰 아들에게 너무 과도하게 의지하였을 뿐이다. 아들은 아들이지 남편이 아니다.

이건 성장소설이다. 어린 길남이가 대구로 와서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한 기록이요, 자신의 1년 성장을 담은 것이다. 김원일이 원래 6.25전쟁에 관한 소설을 많이 썼다고 한다. 전쟁의 참화는 박완서의 소설에서도 등장하더니 그 시절을 겪은 작가들에게는 쓰지 않을 수 없는 화두였나 보다.



2020/09/25 16:34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하여,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를 읽고 2020

중앙대 김누리교수가 차이나는 클라스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3회 강의를 했는데 그중에서 1,2회를 정리해서 출판한 것이다. 그래서 읽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쉬운 말을 썼고,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난 차이나는 클라스를 보고 이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을 읽는 것보다는 차클을 보는 것이 더 좋았다.

김누리 교수의 전공분야는 독문학이다. 그중에서 귄터 그라스를 전공한 학자다. 귄터 그라스를 연구하면서 독일의 통일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독일의 통일과 독일 사회에 대해서 연구하다 보니 우리 사회가 얼마나 기형적이고, 얼마나 이기적인지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회 체제를 독일식으로 바꾸자고 주장한다.

그럼 독일식 사회체제는 무엇인가? 사회적 자본경제다. 여기서 문제는 사회적이라는거다. 사회적인 것은 공산적인 것이고, 그것은 곧 북한이고, 북한은 빨갱이다. 우리나라에는 사회적 자본주의가 펼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이념대립으로 사회경제가 뿌리내릴 수 없는 구조다.

민주당은 보수고, 국민의 힘은 수구 세력이고, 정의당의 정책보다 메르켈이 속한 기민당보다 더 보수적이다. 기민당은 대학 등록금도 공짜, 실업수당 공짜, 세금 왕창을 주장하고 있는데 아마 이런 정책을 정의당이나 민주당에서 내세운다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빨갱이 정책이라고 난리가 날거다.

그는 우리 사회를 야수적 자본주의라고 하였고, 북한을 독재 공산주의라고 하였다. 자본주의는 속성상 사람을 잡아먹게 되어 있는데 그것을 통제할 수단을 아무것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사람들은 극도로 이기적이고 세속적이다. 북한은 김일성때부터 3대에 걸쳐 세습된 봉건 군주와 같다. 그런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꽃필 수 있을까? 남한과 북한이 통일하면 과연 행복한 세상이 열리겠는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오히려 남한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을 무시할 것이고, 열등감을 느낀 북한 사람들은 남한 사람들의 이기심을 욕할 것이고, 남한땅도 지역으로 갈렸는데 북한까지 갈려서 통일을 하지 않았을 때 보다 더 시끄러운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

이런 세상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남한은 정치적 민주화는 이루었으니 사회, 경제, 문화 민주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촛불혁명이 있었지만 그 주체들은 다음날 회사로 가서 다시 꼰대가 되고, 갑질을 하고, 갑의 횡포가 횡행하면 이건 아직 우리의 민주화가 덜 진행된 것이다. 이런 부분들을 고쳐나가야한다. 그 방법은 다시 개혁이다. 특히 경제 민주화나 사회 민주화는 아직도 요원하다. 학생들의 입시지옥이나 대기업의 횡포, 언론, 정치, 법, 문화계등 우리 사회의 전 부분이 거대 자본에 의해 포위됐는데 이런 구조를 사람사는 구조로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선행될 것이 통일이 아니라 종전의 선언이고, 종전이 선행되어야 독일의 사회자본주의가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의 6.8혁명에 대해서 말했다. 그 거대한 물결이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못한 이유가 박정희의 군부와 김신조를 남파한 김일성과 호치민의 합작품이고, 세상이 6.8의 수혜를 받아 개혁이 이루어졌는데 우리나라만 비켜가서 개혁의 상상력이 부족해졌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6.8세대를 말할 때 보통 86세대를 말하는데 그들이 비판받는 이유는 독재에 맞서면서 그들과 닮아졌다는 것이다. 욕하면서 배운다고 했던가? 86세대는 정치민주화는 이뤘지만 사회나 경제, 교육 개혁을 시도하지 않았고, 오히려 거기에 편승했다.

내 본 모습을 보려면 객관화란 작업을 해야한다. 객관화가 되기 위해서는 거리를 두어야 한다. 현재 한국에 살면서 한국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독일에서 살면서 한국을 비교하고, 그리고 느낀 것들을 얘기하는 교수의 얘기가 절절했다. 좋은 책이다. 차클에서 다뤘던 얘기들 외에도 다른 얘기도 넣었다고 하는데 유튜브에서 김누리교수 검색해서 강연 찾아보는 것이 책 읽는 것보다 좋았다.

2020/09/25 15:55

일본은 언제까지 패전국가로 남을 것인가? 영속패전론을 읽고 2020

시라이 사토시라는 일본의 젊은 학자가 쓴 영속패전론이다. 영속 패전론이란 일본이 1945년 미국에 의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이후 아직까지 그 전후 체제가 변화되지 않아서 패전의 역사가 청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은 2차대전의 패전을 패전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종전이라고 한다. 종전이란 전쟁이 끝났다는, 자신은 전쟁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3자적 관점의 용어다. 일본은 종전을 한 것이 아니라 핵폭탄 두방 얻어맞고, 도쿄 대공습에 의해 사람들이 네이팜탄에 의해 엄청난 인명 손실을 있고 나서 미국에 항복한 패전국가다.

문제는 전쟁 책임자의 처벌 문제다.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일왕은 미국에 의해서 책임이 면제되었다. 아울러 전쟁을 획책한 일본 군부 세력들도 중국의 공산화와 냉전체제가 확고해지니 일본을 미국을 방어하는 최후의 보루로 삼으려는 미국의 결정에 의해 살아남아 지금까지 정치계를 주름잡고 있다.

문제는 전쟁을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전쟁을 책임지지 않으니 발생한다. 이들은 미국의 모든 요구를 들어준다. 미국의 꼭두각시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언론, 경제, 정치, 문화계를 잡고 흔든다. 이것은 일본이 고도성장기 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플라자합의 이후 그들이 말하는 잃어버린 20년이 흐르고, 계속 노령화되는 인구와 점점 추월해오는 한국을 보면서 위기의식을 느낀다. 그러나 일본 국민은 아직도 아베를 비롯한 수구 세력들에게 충성한다.

후쿠시마에 원자력 발전소에 사고가 나도 그들의 대처는 너무나 안일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해도 문제없다고만 외치지 그들은 국민을 위해 나서지 않았다. 도대체 책임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에게 와야할 분노를 엉뚱하게 한국이나 북한 또는 중국에 쏟아붓는다.

이게 다 전후에 책임질 사람들이 제대로 책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번 비틀어진 형상이 계속 이어지니 현재까지도 그 비틀어진 형상으로 인해 고통받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기댈 곳은 한군데 미국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의 수뇌부는 일본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든지 필요에 의해 미국과 일전을 불사할 나라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일본을 믿을 수 없다고도 말한다. 그리고 중국이 개방되고, 북한과 남한의 통일이 앞당겨져서 굳이 일본의 방어선이 필요없다면 미국 역시 일본을 버릴 것이다. 그럼 일본은 어쩌자는 것인가? 미국에 팽당하면 한국이나 중국, 베트남 등등 해서 자신의 역사를 부정한 그들이 과연 제대로 버텨낼 수 있을까?

영속패전론을 읽다보면 우리 한국의 모습이 묘하게 교차된다. 우리 역시 남북 분단이라는 냉전에 의해 친일파들을 제대로 숙청하지 못했고, 그들이 한국 사회를 이끌다보니 사회정의가 아주 뒤틀리게 되었다. 박근혜가 세월호 사고 때 그녀는 자신이 책임져야 할 몫이라는 사실을 도대체 인정하지 않았다. 교통사고도 대통령이 책임지냐는 의식구조는 후쿠시마 발전소가 폭파되어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그건 발전소의 사고지 아베 문제는 아니라는 인식과 차이가 없다. 한국의 정치인 역시 책임지지 않았고, 우리는 그들을 심판했다.

미국이 싸논 똥 때문에 한국과 일본은 전후에 아주 뒤틀린 역사를 맞이했던 것이다. 한국은 다행히도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고,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정치적인데 일본은 아직도 전후의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일본 국민들이 깨어나야 하는데 그들은 점점 늙어서 보수화되고 젊은이들은 무기력하니 장래가 걱정이다. 한국이 정치 민주화 말고 사회, 경제 민주화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통일이 다이나믹하게 벌어진다면 우리는 진정한 선진국으로 들어가는 부심을 갖게 될 것이고, 일본은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주 씁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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