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1 14:15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읽고 2019

500여쪽의 책을 읽다보면 페이지 한장한장마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아무 생각없이 읽으면 그냥 쭉쭉 넘어가지만 생각이라는 것을 한다거나, 과학이라는 것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접근하면 그 양의 방대함에 질린다. 물론 천천히 읽으면서 중요 내용을 요약까지 하면서 읽으면 좋은 공부거리가 된다. 한 시대를 살았던 다양한 과학자들의 인생 모습을 알게 되는 것은 덤으로 따라온다. 그러나 시간이 오래 걸리고, 지친다.

수능시험에도 나올법한 책으로 소개되고 있다. 책의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소설만 읽어와서 그런지, 편식이 아닌 편독이라 그런지 쉽게 지친다. 책의 밀도가 아주 높아서 그런것 같다.

지구라는 행성이 사람이 존재하게 된 것이 정말 우연이었으며, 지구가 태양과 조금만 더 가깝거나 멀었다면 대기가 존재할 수 없어 물도 증발되고, 구름도 사라지고, 결국 뜨거운 금성이나 죽은 화성과 같이 변해 있을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구가 그렇게 평안한 행성도 아니다. 처음 지구가 생겼을 땐 이산화황이나 용암으로 들끓거나 빙하기를 맞아 지구 전체가 꽁꽁 얼어버렸던 시절도 있었다. 이렇게 기후가 사람 살기에 적당한 기온이 된 것이 45억년 지구의 역사 중에서 얼마 안되었다고 하니 우리 인류는 복을 제대로 받은거다.

우주의 생성은 읽고 나서도 궁금하다. 빅뱅이 있기 전에 우주는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 우주의 물질을 모두 품을만한 압축이 과연 가능한가? 그 빅뱅이란 건 전 우주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있는 은하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빅뱅의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우주에 필요한 기체들과 물질들이 생성되었고, 수백나노초까지 분석해서 그 짧은 시간에 무엇이 발생했는지 탐구하는 것도  과학을 떠나 조금 황당하다. 그게 가능한가?  CERN에서 두 물질을 빠르게 회전시켜 충돌시켰을 때 생성되는 물질에서 빅뱅에서 생겼던 물질들을 발견한다고 하던데 그게 잘못되어 충돌되면서 블랙홀이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무섭기도 하다.

뉴턴의 얘기도 재밌다. 그는 천재가 맞는데 정작 그는 일생을 연금술에 관심을 두고 거기에 몰두했다고 하니 그가 만유인력 발견의 열정으로 평생을 힘썼다면 과학의 발달은 또 얼마나 진보했을까? 해저탐험 얘기도 재밌다. 우리는 달이나 화성의 토양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심지어 태양의 물질에 대해서도 알고 있으나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바다 속은 너무 모른다. 심해에 들어가려면 높은 수압을 견딜 잠수정을 만들어야 하기에 큰 비용이 들어가지만 우주탐사처럼 모양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지구의 바다를 너무 모른다. 지구는 70%가 바다이고, 30%의 육지 중에서 산이나 호수, 빙하 등을 제외한 사람이 살만한 평지는 극히 적은데 지금까지 무신경하게 바다를 무시할지는 신경 써 볼 일이다. 언젠간 우리는 바다속에서 생존해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땅 속은 어떻게 생겼을까, 화석으로 지구를 살다간 생물들을 연구하는 것이 왜 어려운가, 바이러스나 미생물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생물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던 과학자들, 유전자 염색체의 발견 등등해서 과학에서 다룰만한 것들은 모두 다루고 있다.

코스모스나 이기적 유전자를 분명 읽어서 반복되는 내용은 쉽게 넘어갈 줄 알았는데 내용이 새롭게 느껴지니 벌써 치매가 왔나?

현재 학생들이 배우는 과학의 상식이 한때는 어떤 인간이 전 생애를 걸고 연구한 것임을 생각하면 숙연해진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하면 자신의 연구에 성공을 거둬 이름자라도 남기지 못하고 평생을 쓸쓸한 실험실에서 연구만 하다 간 사람들도 많으리라. 과학의 견문을 넓혀주는 책이되, 한번 읽기보다는 가까이 두고 자주 손이 가야 할 책 같다.

2019/11/11 19:47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대변동을 읽고 2019

지난주 토요일이었던 것 같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가서 살 것이 있어 갔다. 살 물건 사고, 앉아서 책이나 읽자하고 자리 하나 차지하고 앉아 읽고 있는데 방송으로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교보문고에 와서 사인회를 한다고 했다. 처음엔 무시했다가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그 양반의 사인을 받을 기회가 또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사인회 하는 곳에 갔더니 사람들의 줄이 길었고, 진짜 저자가 와서 열심히 사인회를 하고 있었다. 옆에는 통역사 한사람이 붙어 있었고, 나도 가서 사인 받으려고 이 책 대변동을 사서 갔다. 총균쇠도 사인받고 싶어서 그것도 사려고 했는데 사인회를 주최한 김영사에서 1인당 대변동 한권만 해준다고 해서 아쉽게 총균쇠는 사지 않았다.

사인도 받고 내 핸드폰으로 같이 사진도 찍었다. 언젠가 내 프사 사진에 대문짝만하게 걸릴 사진 한장을 얻은 것이다. 그와 나 사이에 있던 광고물품들이 눈에 거슬렸지만 포토샵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싹 지워버리고 그와 나, 그리고 교보 전경만 남기면 된다.

여하튼 그렇게 사가지고 온 책이다. 총균쇠는 힘들게 읽었고, 문명의 붕괴는 재미있게 읽었었다. 이 책은 재미있을까, 어려울까 기대반, 걱정반 되었는데 읽어보니 쉽게 서술되어 있었다.

먼저 저자 자신의 위기에 대해서 서술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개인이 위기에 있을 때 그것을 돌파할 수 있는 주요 요인들을 12가지로 제시했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 뿐만 아니라 나라에서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 요인들은,
1. 위기 상태의 인정 (자신이 위기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
2.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개인적 책임의 수용 (잘못에 대한 자신의 책임에 대한 인정도 포함된다.)
3. 울타리 세우기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구분짓기)
4. 다른 사람과 지원 단체의 물질적이고 정서적인 지원 (아주 중요하다)
5. 문제 해결 방법의 본보기로 삼을 만한 다른 사람의 사례
6. 자아 강도
7. 정직한 자아 평가
8. 과거에 경험한 위기
9. 인내
10. 유연한 성격
11. 개인의 핵심 가치
12. 개인적 제약으로부터의 해방
이렇게 12가지를 제시했고, 결만 다르지 나라의 위기에서도 그런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하였다. 그리고 6개 나라의 사례를 들었는데 핀란드, 일본, 칠레, 인도네시아, 독일, 오스트레일리아이다.

먼저 핀란드는 원래 스웨덴 식민지였으나 해방된 뒤에도 국토의 대부분을 강력한 러시아와 맞대고 있어서 언제든지 러시아에 먹힐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 역시 핀란드 뒤에 있는 유럽이 찜찜해서 정복하려고 하는데 핀란드가 죽기살기로 싸운다. 겨울전쟁이라 일컫는 이 전쟁에서 핀란드의 엄청난 성인 남자들이 죽어갔다. 그리고 2차세계대전 때라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기도 어려웠다. 그리하여 핀란드는 자국의 영토 보존을 위해 러시아가 달라고 하는 땅덩어리 떼어주고, 러시아의 눈치를 살피면서 언론도 통제하고, 정치도 통제되고 하면서 러시아 눈치보기 작전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서방이나 다른 나라들은 핀란드를 비난한다. 그러나 비난한 나라들 중에서 핀란드가 위기에 빠졌을 때 도운 나라는 없었다. 결국, 러시아는 핀란드를 자신들에게 안전한 나라로 보았고, 이를 바탕으로 해서 지금과 같은 나라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은 메이지 시대때 서양 세력의 과학문물에 깜짝 놀라 일본이 그들의 과학문명을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전통을 살려나가고, 서양의 법과 정치제도, 경제, 문화 등을 받아 들여서 식민지였으나 가장 빨리 개화한 나라가 되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런 전통을 1930년대 멋모르는 젊은 군인들이 세계 정세도 살피지 못하고 미국을 전쟁에 끌어들이고 러시아, 중국에서까지 전선을 확대하는 바람에 쫄딱 망했다는 얘기다. 자아평가가 안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후손들이 나대고 있는 것이다.

칠레는 원래 민주화된 나라였으나 아예데가 좌파이면서 대통령이 되자 미국이 남미의 공산화가 걱정되어 우파 세력에게 지원을 하여 아옌데 추출에 나서다가 피노체트라는 세기의 악마가 일으킨 쿠테타를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피노체트 하의 군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칠레 국민들이 고문으로 죽어갔다. 그가 죽은 이후에도 사람들은 그에 대한 평가가 긍정과 부정으로 나뉘어 있으나 국민들을 통합할 수 있는 대통령이 나와 잘 마무리되고 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는 원래 섬이 많고, 주민들도 같은 나라라는 정체성이 없었는데 인도네시아어를 국어로 사용하고, 초대 수카르노 대통령이 종신을 선언하면서 외세확장에 나서다가 군벌 수하르토에게 추출된다. 그리고 그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실시하였지만, 국민들은 아직 민주주의를 받아드릴 단계가 아니라고 하여 철권통치를 30년간이나 실시했다. 그리하여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한세대가 지나도록 민주주의를 학습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독일은 히틀러의 등장과 세계2차대전의 패배, 나라가 분단되고, 패전국의 낙인이 제대로 박힌 상태에서 전쟁을 끝냈으나 그 이후로 빌리브란트가 폴란드에 가서 자신의 침략 행위에 대해 무릎을 꿇고 사죄하고, 동서독이 나뉜 것을 인정하고, 히틀러의 유산을 박물관으로 만들어 모든 학생들이 그 부끄러운 역사를 배우게 함으로써 유럽 국가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면서 후엔 통일까지 이루게 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원래 영국에 있던 죄수들을 수용했던 곳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의 나라로 독립되었다. 영국사람들만 호주에 이민올 수 있었고, 자신의 모국은 영국이라 칭했지만 2차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호주에 폭탄을 터뜨리고, 영국이 호주를 버리고 EU에 가입해 버리자 결국 그들도 백호주의를 버리고 아시아와 친하게 되었다.

미국과 일본의 위기에 대해서 말한다. 일본의 위기는 우리나라의 위기와 같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남녀 모두 열심히 공부하나 여성은 출산이라는 한계가 있다. 이걸 국가나 사회가 돌보아주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한국이나 일본은 너무 미흡하다. 그리하여 좋은 인재들이 결혼과 동시에 가정에 묶여버리게 되고, 결국 출산율이 1%도 안되는 사태까지 나아가게 됐다. 일본을 얘기하는데 자꾸 한국이 보였고, 우리가 너무 일본의 가부장적인 기업문화를 받아들인게 아닌지 씁쓸했다.

일본의 역사반성엔 아주 따끔하다. 우리가 늘 알고 있던 얘기들이다. 독일과의 비교도 그렇고, 이 문제가 앞으로 일본의 발전에 큰 저해 요인이 될거라고 말한다. 일본이 10억이 넘는 중국과 핵을 보유한 북한과 패스트팔로어로서 일본을 추월하려는 한국을 지근거리에 두고 저렇게 심사 뒤틀리는 얘기만 하고 있으니 언젠가 부메랑이 될거라는 얘기다. 일본은 1930년대 멋모르는 젊은 군인들이 전쟁을 일으키던 그 후손들이 아직도 나라를 제멋대로 다스리고 있다. 역사의 반성이 제대로 되지 않은거다.

그 후에는 세계의 위기를 핵과 기후문제, 자원문제 등등으로 나누어 얘기했는데 많이 듣던 얘기의 반복이다.

메이지유신을 말할 때의 일본은 너무 얄미울 정도로 처신을 잘해서 읽기 힘들다가 1930년대와 40년대 멋모르는 젊은 군인들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설치다가 원자폭탄 2방에 나가 떨어진 얘기는 재미있었다. 문제는 그 후에 자기 연민에 빠진 일본이 역사 반성을 제대로 안하고, 자기들이 피해국가인양 행세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옆에 중국이 있고, 위엔 러시아, 밑에 일본이 있으며, 태평양 건너엔 미국이 있다. 핀란드보다도 더 위험한 처지다. 그 나라엔 러시아 밖에 없었지만 우린 사방이 다 강대국이다. 그리고 식민지로 지냈던 불행한 과거도 있다. 지도자나 국민들이 생각을 유연하게 하면서 외교를 잘 펼쳐야 할 것이다. 어려운 처지다.

2019/11/08 18:21

서머셋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를 읽고 2019

인간의 굴레에서를 읽었다.읽는데 두주일 걸린 것 같다. 이야기가 재미없어서가 아니다. 마음이 바쁘니 책으로 손이 가지 않아서 그런거다. 한번 잡으면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고리타분한 사랑 놀음이나 장르 소설이 아니라 건전한 성장소설인데도 어느새 읽다보면 주인공을 응원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기도 하다. 작가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사제로 있는 친척집에서 자랐으며, 말더듬이 심해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많은 놀림을 당했다고 한다. 여기의 주인공 필립은 다리를 저는 것으로 나온다. 그로 인해서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하고 그게 성격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나온다. 거의 작가의 이야기이지만 다른 것이 있다면 그가 사랑했던 밀드레드와 샐리는 가공의 인물이란 것이다. 밀드레드와의 그 끔찍한 사랑은 소설이니까 가능하지 아무리 필립이 그녀를 사랑한다고 해도 저런 성격파탄자한테 계속 얽매이는 것은 소설에서나 가능할 이야기일 것이다.

줄거리는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51XXX9500068에 잘 나와 있다. 책을 읽는 기간이 두주일이었다 보니 가끔 앞부분이 까먹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요 홈페이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느낀 점은 작가가 글을 참 잘 썼다는 것과 자유롭게 살아간다는 것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스스로 발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 알게 해준다는 것이다. 집에서 사육된 강아지는 따뜻한 보금자리와 음식이 제공되지만 자유가 없고, 그 자유를 찾은 들개는 평생을 하루 먹을 것을 찾아야하고,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도모해야 한다. 자유엔 큰 댓가가 따른다.

이야기는 크게 두줄기인데 하나는 그가 자신이 진정 좋아할 수 있는 직업을 찾는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그 과정에서 사랑을 하고, 배신을 당하며 느끼는 인생이 뭔가에 대한 스스로의 깨달음이라 하겠다. 우선 그는 사제가 되려했으나 그 형식적인 답답함에 질려 그만두었다. 그 후에 회계사가 되려고 했으나 역시 그의 천성에 맞지 않았다. 다시 빠리로 가서 화가가 되려했으나 자신의 그림 솜씨가 평범함을 깨닫고 포기한다. 빠리에서 만났던 다양한 군상들의 화가 지망생들은 자신의 능력이 부족할지 몰라 떨면서도 스스로 객관화시키지 못해 그곳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다. 자신의 꿈이 화가였으나 능력이 안되는데 그걸 용납할 수 없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의 고집으로 계속 화가 공부를 하다 결국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도 있다. 꿈을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자기 객관화 작업이 없으면 얼마나 무모한지 읽으면서 섬뜩했다.

그는 결국 아버지가 택했던 의사라는 직업을 찾는데 자신의 성격과 잘 맞아 어려움속에 공부를 마치고 의사가 된다. 의사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도 주식투자에 자기가 상속받은 돈을 왕창 맡겼다가 쪽박을 차고, 결국 공부도 포기하고 노숙을 하면서 애설니네 가족에 빌붙어 살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숙부인 사제가 죽어 그의 재산이 자신에게 상속되길 바란다. 무섭다. 가족이 죽어야 내가 사니 빨리 죽기를 바라는 마음과 스스로 숙부를 죽이려는 마음까지 가졌으니 말이다. 돈이 문제다. 사람은 사랑때문에 자살하진 않지만 돈 때문에는 자살을 한다. 탁견이다. 그리고 그는 그 밑바닥까지 내려가 갖은 고생을 하다 숙부가 돌아가시고 유산을 상속받아 결국 의사 면허를 따고 정식으로 의사가 된다.

빠리에서 만난 크런쇼가 인생은 페르시아의 양탄자와 같다고 말한다. 그게 무슨 의미냐고 묻자, 그 답은 필립이 스스로 찾아보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밀드레드와 같은 못된 여자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주식투자에 재산을 날려 풍찬 노숙을 하다가, 그러다가 의사 견습생이 되어 가난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보면서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 그는 책을 좋아해서 그렇게 많은 책을 읽었어도 그 답을 구할 수 없었는데 직접 갖은 고생을 겪으면서 인생의 의미를 찾게 된 것이다. 그가 찾은 답을 알고 싶으면 책을 읽어보면 된다.

마무리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사랑하는 여인도 만나고, 의사로서 보람된 일을 할 수도 있고, 그를 지지해주는 경험많은 의사도 만나니 말이다. 비록 그가 인생 계획으로 세운 세계 여행은 떠나지 못하지만소박한 어촌에서, 그 주민들과 자신의 아이들과 사랑하는 아내와 알콩달콩 잘 살거란 생각이 든다. 그는 인생의 의미를 알고 있으니 무리하지 않을 것이고, 욕심내지 않을 것이기에...



2019/10/29 14:49

노인과 바다를 읽고 2019

노인과 바다를 읽었다. 내게 이 책은 어린왕자와 비슷한 책이다. 어릴때부터 읽어 보려 노력했지만 번번히 실패로만 끝났던 책. 그게 내가 느낀 이 책의 인상이다.

그 이유는 뭘까? 어린왕자는 각 챕터마다 이야기의 장소나 배경, 인물, 사건들이 다르게 나타나지만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바다 한가운데서 청새치와 노인이 서로 씨름을 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어떻게 보면 정말 지루하다.

헤밍웨이가 대단한 것이 이 뻔한 공간에서 그것도 시간은 딱 삼일 밖에 안되는게 그 배경을 가지고 소설 한편을 뚝딱 썼다는 것이다. 30쪽짜리 단편소설도 쓰기 어려운 여건에서 말이다.

소설 쓰기가 어렵다보니 의식의 흐름이라고 자꾸 그의 생각이 반복되어 나타난다. 처음 이런 세팅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글을 읽으면 그 줄거리에 동화되어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낼 수 있는데 여기에 실패하면 흥미를 못느끼고, 책 읽기가 아주 어려워진다. 사건다운 사건은 일어나지 않고, 지루하게 이어지는 글들을 읽다보면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란 생각이 절로 난다.

이 책으로 헤밍웨이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야구로 비유하자면 한물 간 야구선수가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홈런을 쳐낸 것이다. 언젠가 얘기했던 것처럼 헤밍웨이의 둘째 부인은 엄청난 부자였고, 그는 그녀와 결혼했던 10년동안 바다낚시에, 투우관람에, 세계 여행에 빠져 글을 쓰지 않았다. 정신 차리고 부인과 이혼하고 나서 글을 쓰려했지만 글이 써지지 않는다. 간신히 써낸 글은 문단의 혹평을 받고 그는 한물간 퇴물이 되어 갔을 때 이 책이 나온 것이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83일동안 고기 한마리 잡지못한 산티아고는 다음날 혼자 배를 끌고 나와 이번엔 조금 더 먼 바다로 나간다. 그러다 그에게 마침내 고기 한마리가 걸리는데 문제는 이놈이 엄청난 크기의 청새치라는 것이었다. 힘이 좋아 배를 끌고 나간다. 억지로 당기면 줄이 끊어지거나 낚시바늘이 풀려서 달아날 것이다. 그놈이 힘 떨어질 때까지 낚싯줄을 어깨에 메고 버티기에 들어간다. 그렇게 이틀간 청새치와 씨름을 하다 드디어 놈을 잡았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자기 배보다 더 큰 고기였다. 그런데 문제는 심장에 작살을 꽂을 때 바다속에 엄청난 피가 쏟아졌고 이것이 깊은 바닷속에 있던 상어들을 각성시킨다. 천천히 몰려오는 상어들, 그에 맞선 노인의 사투. 결국 그는 패배한다. 그리하여 그는 뼈만 남은 고기를 가지고 돌아오나 그는 꿈에서 사자 꿈을 꾼다.

청새치를 잡고 돌아오는 길에 만나는 상어들의 모습을 읽을 때는 영화 '본시리즈'에 나오는 제임스 본과 악당들이 생각났다. 주인공이 악당들을 하나하나 무찌를 때마다 새롭게 나타나는 적들. 새로운 격투술과 재능을 가지고 있는 적들을 주인공은 차례로 격파해 나간다. 영화와 다른 점은 영화에선 적들이 꼭 한명씩 나타나지만 소설에선 마지막 상어들의 공격은 떼로 달려들어 주인공이 손 쓸 틈도 없이 청새치를 모두 먹어버렸다는 것이다.

또 느낀 점은 노인을 완전히 영웅으로 묘사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는 나이가 엄청 든 고령이고 젊었을 때에 비해 기력도 많이 쇠했지만 이틀동안 잠도 거의 자지 못하며 청새치와 사투를 벌였고, 그 후에도 또 하룻동안 상어들과 전쟁을 치른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자신보다 두배는 큰 청새치를 잡은 사람의 이야기를 봤는데 그는 8시간 동안 씨름을 했었다. 최신식 배에 릴낚시처럼 장비도 받쳐주는 상황에서, 더구나 옆에서 조력자가 도움을 받아도 8시간이다. 이틀동안 줄을 등에 걸고 버티는 모습도 엄청나고, 도중에 줄이 끊어지지 않고 그놈을 사냥하는 것도 대단하다. 얼마나 체력이 되길래 연로한 노인이 3일간이나 제대로 밥도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하면서 아무도 없는 망망대해에서 낚시줄 하나에 의지해서 그 무지막지한 놈과 사투를 벌인단 말인가?

그는 대단한 체력을 가졌으며, 오랫동안 어부로서의 경험을 갖고 있었다. 상어떼가 몰려들어도 겁먹지 않는다. 자신이 졌음을 깨끗하게 인정하고 집으로 돌아와 상어에 쫓기는 꿈이 아니라 사자 꿈을 꾼다. 헤밍웨이는 영웅 캐릭터를 창조한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모습에 감동했다. 그렇다. 인간은 파멸할지언정 패배하진 않는다.

2019/10/21 16:44

어린왕자를 읽고 2019

어린왕자를 일컬어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하던데 난 이 책을 읽기에 주저주저하다가 읽기를 포기한 경험이 많았다. 중학교때,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데 무슨 뜬구름 잡는 얘기도 아니고, 사건의 개연성도 떨어지고, 상징과 비유가 많이 나와서 그런지 도통 내용이 쉽게 들어오지 않아 포기하고 그냥 도서관에 책을 반납했었다. 그 후에도 몇번 읽어보는데 지구에 불시착하는 모습을 보지도 못하고 그냥 포기했다.

신문에서 보니까 어떤 사람은 이 책을 너무도 좋아해서 100번 넘게 읽은 이도 있었다. 나중엔 책을 달달 외웠단다. 그렇게 외워서 대학 갈 때 논술 시험을 보는데 논술 주제가 어린왕자의 한 경구와 비슷해서 그 구절을 그대로 인용해서 그 대학에 붙었다는 일화를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다.

난 그런 추억이 없어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번에 작심하고 한번 읽어보자 했다. 아니, 이번엔 필사다. 책을 모조리 필사하는거다. 하다보면 내용을 조금 더 깊이있게 정리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필사를 마치고 유튜브로 어린왕자 감상평 등등을 검색해 보니 마지막에 그가 뱀에 물려 자살했다는 의견도 있었고, 어린왕자의 멋진 경구들을 소개하는 내용도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코엘료의 '연금술사'가 떠올랐다. 구성도 유사하고,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것도 그렇다. 어른들에게 이런 류의 책이 인기가 있는 것은 아직 남아있는 어린날의 감수성을 제대로 건드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잊고 지냈던 순수에의 동경이 의식을 비집고 불쑥 나왔기 때문일까?

내용은 조그마한 소행성에 살고 있던 어린왕자에게 갑자기 장미꽃이 찾아온다. 장미는 가시를 가지고 있는 화려한 꽃. 어린왕자는 장미꽃을 사랑하지만 그 꽃은 도도하기만 하다. 결국 어린왕자는 그 별을 떠나고, 장미꽃은 자신의 진심을 비로소 말한다. 어린왕자는 여러 별을 여행하며 다양한 군상의 사람들을 만난다. 지구상에 살면서 쓸데없는 일에 인생을 낭비하는 인간 군상들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돈, 권력, 명예 등등. 그런 것에 목을 매는 이들을 보면서 어린왕자는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기 어렵다.

지구로 온 어린왕자는 나를 만난다. 사막에 불시착해서 곤란을 겪던 나에게 어린왕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면서 멋진 문장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몇가지 소개하자면,

네 장미를 그렇게 소중하게 만든건 네가 너의 장미에게 소비한 시간 때문이야.

그러나 너는 잊으면 안돼. 네가 길들인 것에 너는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집이나 별에서 사막이나 그걸 아름답게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야.

오후 4시에 네가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하게 되지. 너는 나한테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것이 될거야. 나는 너에게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것이 될테고...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여러분들이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고 어른들에게 말하면, 어른들은 도무지 중요한 것을 묻지 않는다. '그애 목소리는 어떠니? 그애는 무슨 놀이를 좋아하니? 그애도 나비를 채집하니?' 절대로 이렇게 묻는 법이 없다. '그앤 나이가 몇이지? 형제들은 몇이나 되고? 몸무게는 얼마니? 그애 아버지는 얼마나 버니?'

그렇다. 그 존재가 소중한 것은 그에게 쏟은 시간이 있기 때문이고, 그 시간 덕분에 난 그 존재에 대해 책임이 있다. 반려묘도 서로에게 길들여져야 소중한 존재가 되듯 인간도 서로에게 길들여져야 의미있는 존재가 된다. 어른들의 허위의식을 말하는 모습도 날카롭다. 정작 알아야 할 것들은 묻지 않고, 곁가지만 묻고 있는 어른들 말이다.

그가 자신의 별로 잘 돌아갔는지, 아니면 자살을 한 것인지, 그도저도 아니면 주인공인 나의 어린 날의 감성을 어린왕자에 빗댄 것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잠언과도 같은 몇구절의 말이 좋았다는 것. 그러나 더이상의 감성은 없었다. 내가 조금 더 젊어서 읽었더라면 좋았겠는데 감정이 무뎌져서 그런지 외울만큼 읽고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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