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07 16:33

박완서의 나목을 읽고 2018

 전쟁 기간 중에 오빠와 숙부가 목숨을 잃고 말았으며 대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미8군 PX의 초상화부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박수근 화백을 알게 된다. 이후 서울 동화백화점에서 일하다 같은 동화백화점 측량기사였던 서울토박이 집안 출신인 호영진과 1953년 결혼했으며, 1남 4녀의 자식을 두었다.

결혼한 뒤로도 책읽기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평온한 생활이 이어지다 보니 글을 쓸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68년 열린 박수근의 유작전을 보고 그에 대한 증언의 욕구가 치솟으면서 글을 쓸 결심을 하게 된다.

음에 제가 시작한 거는 소설이 아니라 전기였어요. 박수근 전기를 써야겠다. 투고하게 된 것도 처음부터 여성동아였던 게 아니에요. 여성동아에서는 7월달에 여류장편소설 마감이 있고, 또 신동아가 있지요. 지금은 교양지도 많지만 그때 신동아가 아주 고급 교양지였습니다. 거기서는 논픽션 공모를 했어요. 그것이 5월이 마감인데, 이듬해 1969년이었을 거예요. 논픽션은 기럭지가 길지 않아요. 여류 장편은 1,200매 이상이어야 되는데 이거는 300, 400매만 해도 되고. 그래서 저기다 내야지 하고 쓰기 시작했어요. 써 보려고 하니까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게 너무 없는 거예요. 그냥 PX에서 그런 일 있었고, 같이 차를 마시면서 어딜 사냐, 창신동 살고.. 이런 얘기 외에는. 쓸 거라곤 나 같은 거한테 그렇게 막 취급받고 화가로서는 우중충한 데 앉아서 그리면서 얼마나 모욕스러웠을까, 고거 원고지 10장도 안 되는 거예요. 논픽션이면 그 사람이 어쩌고저쩌고 다 있어야잖아요. 그런데 아는 것도 거의 없어요.

그러니까 자꾸 쓰다가 빗나가면서 내가 상상한 걸 보탤 적이 있어요. 그럴 때는 즐겁게 써져요. 원고지에다가 쓸 때니까 하루 대여섯 장만 써야지 했는데, 20장도 써지는 날이 있어. 보면 막 내가 보태는 거야. 고 다음날 계속해서 쓰려고 어제 거 읽어 보면, 이건 아닌 거예요. 진짜만 추리고 나면 뼈대만 남고. 말보다는 거짓말을 보태니까 잘 써진다 싶어요. 거짓말을 시키는 게 내 소질이라는 걸 느꼈어요. 그때는 생각도 못했지만, 쪼끔 어려운 말로 하면 상상력이죠. 사실에다 상상력을 보태야지 사실의 뼈대만 갖고 쓰는 건 난 도저히 재미가 없구나.

그런데 만약 논픽션에 냈는데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지면 당선이 됐다가도 취소가 되는 거 아니에요? 거기 규정이 있어요. 논픽션이라는 말 자체가 그렇잖아. 그러면 허가받은 거짓말이라는 건 뭐냐. 픽션이 나에게 맞는구나. 아, 거짓말을 보태니까 이렇게 즐겁고. 쓰는 게 즐거워야 되잖아요? 그래 갖고 쓰던 걸 아주 파기를 해 버렸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날짜도 좋더라고. 내가 그 해, 1970년 초였을 것 같애요. 5월달에 낼려고 쓰던 거를 2,3월 됐을 때 다 찢어버리고는 느닷없이 소설로 바꿨어요. 그거는 1,200장이나 되고 마감은 7월이었습니다. 그렇게 안 나가던 붓이 방향 전환을 하고 나니까 너무너무 빨리 써지는 거예요.


그렇게 써낸 글이 바로 박완서의 데뷔작,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작인 나목이었다. 박완서는 당시 글을 쓰면서 2가지 생각을 염두에 뒀다고 한다. 상금 50만 원을 타서 남편한테 나도 돈 벌어왔다고 자랑하고 싶다는 것과 딸을 잘난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한 어머니를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것. 고생만 하고 막상 공모에서 떨어지면 창피하니까 자식들 몰래 학교 간 뒤나 밤에 주로 글을 썼는데 졸릴 때 자신을 격려해준 것이 바로 50만 원과 엄마였다고 한다. 대단한 점은 처음 쓰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습작 없이 한번에 장편소설 분량을 써내서 공모에서도 한번만에 바로 당선됐다는 것이다.

질문자: 처음 써 보는데 1,200매를 다 쓸 수가 있었어요, 선생님?
박완서: 그러믄요. 네.
질문자: 습작을 안 하셨잖아요?
박완서: 습작 안 해도 책 많이 읽으면 돼요

박완서는 그때까지만 해도 부끄러운 기억이었던 PX 생활이 오히려 작가로서 이름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등 자신에게 좋은 것들을 많이 가져다준 것 같다고 말했다.  [ 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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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은 박완서선생의 처녀작이다. 문장이 아주 부드럽고 때에 따라서는 강하다. 내용은 전쟁중에 '이경'이란 여인이 미PX에서 그림을 그리는 '옥희도'란 화가를 사랑했다는 얘기. 그녀를 좋아한 황태수. 그리고 이경의 어머니와 전쟁중에 폭격으로 죽은 두 오빠의 이야기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경은 어머니와 사는데 오빠 둘은 전쟁중에 집안에 숨어 있다가 숨겨둔 곳이 폭격을 맞는 바람에 모두 죽고 만다. 안타까운 것은 원래 폭격받을 곳은 자기 오빠들이 숨을 곳이 아니라 일가친척이 숨을 곳이었는데 이경이 그쪽이 더 안심이 되어 오빠들을 그쪽으로 숨겨두고 친척은 다른 곳에 숨겼는데 두 오빠가 폭탄에 맞아 숨진 것이다. 그리고 오빠가 죽는 순간 어머니도 정신을 놓고 말았다.

이경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죽음보다 싫은 일이다. 어머니는 언제부턴가 꾸미지를 않는다. 틀니도 대충 끼고 살고, 머리쪽도 빗은지 언젠지 모른다. 이경은 무의식중에 자신때문에 오빠들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더욱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나 찬바람만 분다.

이경은 옥희도란 화가를 좋아한다. 이북에서 국전에서 몇번이나 입상한 훌륭한 화가인데 월남하여 먹을 것이 없자 미군 PX부대에서 미군들 초상화를 그려주며 살아가고 있다. 이경은 그런 옥희도를 좋아하고 옥희도 역시 지친 마음속에 이경에게 끌린다.

이경은 당돌하다. 옥희도가 감기에 걸려 나오지 못하자 황태수를 이끌고 집으로 가서 그의 아내와 안면을 튼 후에 후에는 자기가 당신보다는 옥희도씨를 더 잘 보살필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어의없어하는 옥희도 아내에게 이경이 하는 말. "난 당신보다 젊어요." 당돌하다.

그녀를 좋아하는 황태수가 어느날 이경에게 부탁을 해온다. 형수가 자꾸 결혼하라고 보채는데 네가 나가서 내 여자친구인 척 해달라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이경이 나가서 얘기를 나누고 돌아왔는데 웃기면서 서글펐던게 이경이 옥희도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와보니 엄마가 몸이 쩔쩔 끓고 있었던 것이다. 전날 밤에 계속 비가 왔는데 엄마가 밤새도록 비를 맞고 큰 병을 얻어 결국엔 사망하고 만다. 이경이 엄마가 아파서 의원을 데리러 가는데 마침 이경을 만나러 올라오는 황태수의 형수를 만나 같이 의원을 데려오나 엄마는 사망하고 만다.  황태수의 형수는 장례식의 뒷처리를 모두 맡아서 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이 누구냐고 물어보니 당당히 황태수의 형수라고 말한다. 그렇게 이경은 황태수와 결혼을 한다.

이경이 결혼하기전 옥희도는 며칠동안 휴가를 내어 자신의 그림을 그렸다. 이경은 옥희도의 집에 방문하여 그 그림을 봤는데 그 속에선 어떤 처연함, 절망감이 담긴 고목 한그루가 있었다. 그 그림을 보고 이경은 옥희도의 아내에게 난 당신보다 젊다고 당돌하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황태수와 결혼을 하고 십몇년이 지난 후 옥희도 회고전에 갔을 때 봤던 그 그림은 고목이 아니라 고고히 빛나는 나목이었다는 것이었다. 이경의 삶이 팍팍할 땐 고목으로 보였던 작품이 생활의 여유가 생기니 고목이 아닌 빛나는 나목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란 소설은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이다. 그 소설을 읽고 그가 쓴 책과 수필을 많이 읽은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나목은 처녀작이라는데 어떻게 썼을까 궁금하면서도 제목이 너무 건조해서 재미없을 것 같아 미루다가 읽어보니 재미가 솔솔했다.

나목에서 인상깊었던 세개의 장면을 꼽자면 첫번째가 "난 당신보다 젊어요."라고 옥희도 아내에게 당당하게 말하는 장면과 엄마가 돌아가시고 황태수의 형수와 같이 장례를 치르는 웃프던 장면, 옥희도와 황태수 그리고 이경이 어느 다방에 모여서 어떻게 유부남인 옥희도가 처녀인 이경을 좋아할 수 있냐고 항의하는 장면. 참, 갈등이 많은 장면들인데 어떤 때는 웃기고, 어떤때는 민망하게, 그러면서도 할 얘기는 다했던 박완서 선생의 필력은 대단하다. 

하나밖에 없던 아들은 교통사고로 죽고, 자신의 오빠는 전쟁통에 죽고, 시누이는 결혼한지 얼마 안되서 폐결핵으로 죽었다. 그렇게 비극으로 점철된 그녀의 역사이지만 그녀에겐 글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고통을 글로 승화시켜 여러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자신도 내적 치유를 받은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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