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08 00:07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고 2018

박완서 선생의 자전적 소설이다. 소설이라기보다는 그의 인생을 담담히 기술한 회고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문장이 상당히 빼어나고 난 어제일도 깜빡깜빡하는데 그 옛날 일들을 그렇게 기억하고 계시나 새삼 대단하다고 느꼈던 소설이다.  
나는 개성에서 조금 떨어진 박적골이란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자연을 벗삼아 할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나에게 없는 것이 하나 있다면 아빠. 아빠가 큰 병이 났는데 가족들이 아빠의 병을 고친다고 무당을 불러 굿을 했는데 결국 아빠는 죽고, 사망원인은 복막염으로 추정했다. 다들 명줄이 짧아서 그랬다고 했지만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게 다 무지한 농촌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엄마는 시부모의 뜻을 거역하고 오빠를 데리고 서울로 간다. 거기에서 아들을 공부시킨다는 것이다. 시아버지는 펄쩍 뛰지만 엄마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도 엄마가 갑자기 가위로 머리를 뎅겅 자르더니 기여이 서울로 데려가고 말았다. 
서울로 가기 전에는 그래도 엄마가 서울에서 잘 살 줄 알았는데 막상 간 곳은 현저동으로 사대문 밖 아주 어렵게 살아가는 달동네였다. 엄마는 거기서 삯바느질을 하면서 오빠의 월사금을 내고 있었다. 엄마가 사대문 안으로 위장전입을 하여 나를 그곳으로 보냈다. 입장이 난처하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모르는 애가 왔다고 하고,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면 쟤는 우리 학교 안다니고 다른 곳에 다닌다고 질투다. 여기저기서 왕따다. 거기다가 학교로 가는 길은 숲속 길을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하다. 하지만 난 왕따도, 숲속 길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혼자 있는 것을 고통스럽게 느끼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방학이 되면 박적골로 갔다. 박적골에 갈 때는 그렇게 뜻이 안맞는 엄마와도 뜻이 척척 맞는다. 고운 옷을 입고 선물을 사서 고향에 가면 다른 아이들은 서울에서 온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남다르고 나 역시 그 시선을 즐기고 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이 갔다.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 오빠가 취직한 곳에서 돈을 변통하고, 엄마가 사고를 쳐서 집을 한채 샀다. 오빠는 결혼을 하는데 시누가 아주 예쁜데 자꾸 병원에 있다. 엄마는 아픈 며느리를 걱정하여 결혼을 반대하고, 오빠는 죽으나사나 결혼하겠다고 하더니 기여이 결혼을 하고 만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흘러 시누이는 폐결핵으로 죽고 만다. 
그리고 전쟁이 터진다. 오빠는 그 이전부터 공산주의 사상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그만 쫓기는 신세가 되고 엄마는 방이 남아 자취했던 사람도 좌익 같았는데 아들 생각나서 그냥 계속 돌봐주다가 그 사람이 감옥에 간다. 그리고 전쟁이 나면서 그는 감옥에서 나와 오빠를 보고 감옥에 가기 전에 신세를 졌다고 같이 어머니 보러 가자고 공산당 사람들 데리고 집으로 몰려온다. 그리고 그 모습을 이웃들이 보고 졸지에 좌익 빨갱이 집안으로 몰리게 되었다. 
그리고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 9.28수복으로 북한 인민군들은 모두 북으로 도망가고 졸지에 오빠도 인민군에 붙잡혀 따라가게 된다. 그리고 우리 집안은 빨갱이 집안이 되어 우익과 경찰로부터 사상단속을 받았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6월에 서울대 문리대에 입학한다. 1950년에 서울대에 6월달에 입학한 최초이자 최후의 학번이다. 대학 안에서도 좌우익의 이념대결이 심하고 나는 좌익사상에 경도되어 전쟁이 발발하자 그 모임에 꾸준히 참가한다. 이 역시 서울이 수복되었을 때 추궁을 당한다. 참 어렵고 지난한 세월이었다.
그러다가 인민군에 끌려간 오빠가 탈출하여 집으로 돌아오고 엄마는 오빠를 급히 재혼시키고, 오빠는 고양중학교에 선생으로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한다. 주중에는 관사에서 생활하다가 주말에는 집으로 오는 것이다. 그러다가 1.4후퇴가 터지고 또다시 서울을 버리고 피난을 가야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러던 와중에 오빠가 학교에 가서 총상을 당하는 일이 발생하고 결국 피난을 가지 못하게 되었다.
엄마는 가족들을 데리고 현저동으로 간다. 도시가 텅 비어있다. 모두 피난을 가고 텅 비어있는 도시. 그리고 울리는 사이렌 소리. 그 기괴한 그로테스크한 도시의 풍경을 보면서 나는 이 이야기를 언젠가 꼭 알릴 것이라 결심하며 이야기가 끝난다.

대학때 하숙을 하는데 하숙집 아저씨 말씀이 6.25때 인민군 때문에 죽은 사람들보다 같은 마을 주민들끼리 서로 고자질을 해서 죽은 사람들 수가 더 많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람들이 전쟁이 발발하자 좌우익으로 나뉘어서 서로를 물고 뜯는 야만의 살육현장이 벌어진 것이다. 그 이야기는 한창 감수성 풍부했던 나에게 정말 큰 충격이었다. 어떻게 같은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밀고해서 죽일 수 있는가. 그렇게 해서 그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 어떻게 얼굴을 마주 보고 살아갈 수 있는가. 마을 주민을 볼 때마다 되살아가는 가족의 비참했던 살육들을 어떻게 기억속에서 감추고 살아갈 수 있었단 말인가. 
그 전쟁이 가져다 준 폭력성을 박완서는 몸으로 직접 겪었다. 오빠를 그렇게 잃었고, 숙부가 그렇게 돌아가셨다. 숙모는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살아났고, 피난을 가지 못했기 때문에 주민들조차 서로를 못믿는 세상에서 아무 의지할 데 없이 그들은 이념의 타킷이 되어 살아갔던 것이다. 정말 끔찍한 일이다. 내가 저지르지 않은 일이 오해가 되어 내가 견뎌내지 못할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된다면 이처럼 큰 악몽이 어디 있단 말인가!
오빠는 나약한 인텔리겐차의 전형이다. 이상은 품었으되 그것을 사려깊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해 가족들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엄마는 강건하다. 그 봉건주의 시대에 시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식들을 서울로 데려와서 기생들 삯바느질 해주며 자식들을 키운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은 특별한 아이들이니까 현저동 아이들과 사귀면 안된다고 선민의식까지 심어준다. 박완서는 늘 엄마에게 빚진 것이 있다고 느꼈나보다. 그가 소설가로 데뷔를 하고, 자신이 쓴 소설들을 엄마에게 보여주길 꺼려하고, 엄마가 자신이 쓴 소설을 읽고 발로 써도 그보다는 잘 쓰겠단 비평에 계속 가슴 아파했던 것으로 봐서 말이다. 
후에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란 후속 소설을 발표했다고 하니 그 소설도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현저동에서 모든 사람들이 피난을 가고 사이렌이 울리는데 들려오는 적막감을 몸으로 느꼈을 대학생 박완서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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