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인공인 다이스케는 한량이다. 아버지와 형이 공장을 운영하나 뭐하나 잘 모르겠지만 돈을 열심히 벌고 자신은 30이 넘도록 변변한 직업을 가져보지 못한 채 한달에 한번 아버지 댁에 가서 한달치 생활비를 받아가지고 와 생활을 한다. 그렇다고 딱히 중요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하루종일 책을 읽거나 목욕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면서 하루를 보낸다.
그에게는 히라오카라는 친구가 있다. 대학시절에 같이 알고 지내던 스가누마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이 세명은 죽이 잘 맞아 같이 어울려 다녔다. 스가누마라는 친구에겐 미치요라는 여동생이 오빠를 돌보기 위해서 올라왔는데 스가누마가 장티푸스로 죽고나자 두 친구는 서로 연모의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결국 다이스케가 소개해줘서 히라오카와 미치요는 결혼을 해서 오사카로 떠난다.
그렇게 3년이 흐른 후에 오사카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히라오카는 변해있었다. 생활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은행도 그만두고 새로운 직업을 알아보는데 잘 되지 않는다. 오사카에서 빚을 지는 바람에 돈도 없어 다이스케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미치요는 임신을 하지만 사산을 하고, 그 후로 심장이 약해져 평생 고치지 못하는 병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히라오카가 다이스케에게 말한다. '그때 왜 그녀를 나에게 소개해 줬니?'
그런데 문제는 다이스케가 그녀에 대한 사랑을 제대로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한량이라 돈이 없다. 돈을 빌려주려고 하면 아버지께 돈을 변통하거나 형에게 꿔야 한다. 그러나 함부로 돈을 꿔주지 않는다. 그럼 그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럴 때 형수가 나서서 돈을 변통해 주기도 했다. 미치요는 다이스케를 사랑한다. 다이스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그녀는 얼굴에 생기가 돌고 같이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결국 다이스케는 히라오카에게 당신의 아내를 사랑한다 말하고 히라오카는 배신감을 느껴 그 사실을 그의 아버지에게 알리고, 그 사실을 안 아버지는 그를 호적에서 파 버린다.
이 이야기가 러일전쟁 즈음에 쓰여졌다고 하니 정말로 옛날에 쓰여진 소설이다. 지금 읽으려면 정말로 읽기 힘들다. 일단 묘사가 너무 지루하다. 현대에 왔다면 조금 더 다양한 묘사가 나올 것 같은데 구닥다리 묘사가 너무 많다. 꼭 이광수의 '무정'을 읽고 있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그리고 생각이 너무 고루하다. 남자 두명이 여자 한명을 좋아하는데 왜 여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남성을 선택하지 못하고 남자들에게 끌려가는지 이해가 안된다.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를 우정을 위해서 친구에게 양보한다는 설정은 지금의 시각에서 봤을 때 영 아니올시다이다.
너무 구닥다리 이미지가 나는 책이다. 하기야 하치콕의 영화를 보면 그당시엔 새로운 영화 기법을 도입하여 신선한 영화였음에도 지금에 보면 너무나 일상화되어 보는 사람이 지루한 영화가 많은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그렇게 처음과 중간까지 지루하게 나가다가 후반부에 갈수록 몰입도는 커진다. 미치요는 과연 누구를 좋아하고 있었을까? 과연 다이스케는 친구에게 아내를 달라고 할까 등등해서 제법 몰입도가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은 아주 흥미진진하게 이 책을 읽었을거란 생각이 든다. 소세키의 연보를 보니까 동경제국대 교수도 하고 한때 천엔짜리 지폐에 초상이 실리기도 하고 했는데 위궤양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 곳곳에 속이 쓰리다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일본인의 히토리 기질이 그때도 있었다고 생각이 된다. 누가 돈을 대주기만 하면 유유자적하면서 책읽고 글쓰고, 서양 문물 받아들이는 번역서 쓰고 하면서 세상을 보내는 사람들에 대한 로망 말이다. 다시 읽으라고 하면 안읽겠다. 이 책을 읽은 이유는 해변의 카프카에 나오는 카프카가 소세키 전집을 읽었다고 해서 읽어 보았는데 일본인과 한국인은 문화가 달라서 읽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난 무정은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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