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13 15:02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2018

작가는 방송작가 출신인데 사회고발프로그램을 10년 정도 하다가 작가로 소설을 몇편 쓴 것 같다. 이 소설도 소설이라기보다는 한 여성이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여성의 역할이 어떤지에 대한 르포형식의 소설을 쓴 것이다.
뭐 우리나라야 옛날부터 전통적인 유교국가였기 때문에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았다. 그 지위가 높아진 것이 과연 얼마나 되었으며, 지금까지 제대로 된 대접을 받고 있는지는 소설에 잘 나와 있듯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굳이 여기에 다시 쓸 필요는 없겠다. 어떤 부분은 다소 과장되고, 대다수 부분은 심정적으로 인정이 되는 부분이 많다. 나 역시 남자이기 때문에 여성의 입장을 백프로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객관적 입장에서 봤을 때는 우리나라가 저금 더 젠더로서의 성역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인 것은 확실하다.
먼저 이 소설이 왜 이렇게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을까를 주목한다면 그건 아마도 공감일 것 같다. 82년생 김지영을 떠나서 이 나라에 살고있는 대다수의 출산한 경험을 가진 여성들이 겪는 사회적 차별을 책을 통해서 느꼈고, 그것이 마치 나의 이야기인 것 같아 몇번이고 책을 읽었다는 댓글을 보았다.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그 사정을 알고 그 부분을 정확히 말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쉽게 친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꼭 사람일 필요는 없다. 책도 마찬가지다. 나와 처지가 비슷한데 그것을 정확하고 사실적으로 써주면 김지영이란 여인 대신이 자신이 감정이입이 되고 김지영이 겪는 고통이 곧 나의 고통이 되기 때문에 쉽게 책을 놓기 어렵게 된다. 역량이 있다는 얘기다.
선진국이라는 미국이나 영국도 여성의 사회참여가 활발히 일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고, 북유럽을 비롯한 몇군데 선진국을 제외하면 아직도 세계 여러나라가 여성의 불평등이 심화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유발하라리가 말했듯 처음 상상력을 발휘하여 여성의 불평등이 이렇게 심하게 될 이유가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의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실을 너도 알고 나도 알지만 고쳐지지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한다는 것도 역시 차별이고, 여성이기에 임신을 했을 때 그녀의 입장에서 겪어야 했던 고통들이 모두 자신의 책임으로 견뎌야 하는 이 시스템도 문제다. 
1인당 GNP가 3만달러 시대다. 3인 가정이면 연봉이 9천만원이고, 4인 가정이면 1억2천만원인 시대다. 그렇게 됐는데 왜 이럴까? 세금을 제대로 거두지 않았기 때문이고 걷어서 제대로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적 합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소중한지 경중을 따질 때 젠더로서의 중요성이 후순위로 밀리기 때문이다.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김지영씨에게 희망을 말을 하나 던진다면 그렇게 어렵게 아이를 키우면 후에 아이는 어른이 되어 누구보다 든든한 자신의 지원군이 될 거라는 것이다. 든든한 지원군을 얻고 싶은가? 그럼 그 무게를 견뎌라. 김지영이 졸업하고 취직을 하려고 하는데 할 곳이 마땅치 않자 아버지가 그냥 시집이나 가라는 말에 어머니가 소리를 버럭 지르고 아버지가 세상 태어나서 처음으로 딸꾹질을 하는 장면은 그런 의미에서 인상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지영의 딸 지원이가 다시 엄마와 같은 삶을 살아가지 않으려면 세상은 변해야 한다. 작가 조남주씨 역시 그런 의식을 가지고 이 책을 썼을 것이고, 독자 역시 그런 의미로 책을 읽었을 것이고, 이런 저런 사람들의 생각들이 조금씩 모인다면 세상은 조금씩 변할 것이다. 처음에 던져진 문제의식은 땅 속에 깊이 묻혀있는 듯 보이지만 언젠가 그것이 발화할 기회가 오면 마구마구 분출되어 세상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뒤흔들것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문제의식을 과연 다른 사람들도 같이 갖고 있는가이다. 같은 문제의식이 공유되면 개혁은 시간문제이다. 그리고 그 발화점을 만들고자 이런 소설이 나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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