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27 14:18

박헌영평전을 읽고 2018

영화 암살에 나오는 일제시대의 여성 독립투사에 관한 이야기가 회자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암살의 여주인공 안옥윤과 비슷한 인물이 누군가하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독립투쟁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사람들이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투사였다. 그러나 그들은 해방된 후에 좌우익으로 나뉘고, 6.25를 거치면서 입에 올리면 안되는 인물들이 되었다. 그중 한명이 박헌영의 아내 주세죽이다. 두 사람은 부부이지만 결론이 비극적이고 가슴아프다. 이런 얘기가 영화로 만들어지면 대박칠 것 같은데 역시 우리나라에선 아직 무리일 것 같다.

각설하고 박헌영은 1900년 5월 28일 충남 예산에서 출생했다. 아버지 박현주, 어머니 이학규인데 어머니는 둘째 부인이었으나 첫째부인이 사망하여 자신이 그 역할을 대신하였다. 큰 길 사거리에 집을 짓고 주막을 열었는데 억척스럽게 장사하여 돈이 꽤 모였다고 한다. 박헌영은 16세때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는데 들어가기도 어렵고, 학자금도 비쌌다. 영어공부를 하고싶었던 박헌영은 YMCA에서 영어공부를 열심히하였고, 20세인 1919년에는 3.1운동에도 열심히 참여하였다.

그는 일본을 거쳐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고려공산청년단(고려공청)을 조직하였다. 그시절 사회주의에 경도되었는데 조선민족의 장래를 위해서는 사회주의 제도가 필요하다고 보았고, 레닌과 공산당선언등 사회주의 공부에 열심이었다. 그때 주세죽을 만나 상해에서 결혼하게 된다. 주세죽은 유복한 환경에서 출생하여 사회주의에 열정을 쏟은 신여성이었다. 주세죽은 후에 남편이 감옥에 갇힌 사실을 모르고 낙담하다가 김단야라는 사회주의
박헌영과 그의 부인 주세죽과 딸 비비안나 (출처:중앙일보)
 독립운동가와 재혼을 하였다. 그때 김단야도 부모가 맺어준 아내가 있었으나 서로 부부의 정을 느끼지 못했었다. 김단야는 주세죽의 미모가 뛰어나고, 지적능력도 뛰어난 신여성이라 남편이 감옥에 있는 것을 알려주지 않고 죽었다고 거짓말을 해서 결혼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곧 소련에서 스탈린의 숙청 계획에 몰려 처형당했고, 그의 아내였던 주세죽도 조국(소련)을 배반한 역적으로 몰려 죽을 때까지 고국(조선)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유배지로 쫓겨나 어렵게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주세죽은 후에 남편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나 갈 수 없었고, 박헌영이 김일성에게 죽음을 맞이하자 얼마 되지 않아 사위가 지켜보는 가운데 죽었다.

박헌영은 자신이 감옥에 있을 때 주세죽이 김단야와 결혼한 사실을 뒤늦게 알았고, 평생 주세죽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도 조선에 들어와 정순년이란 여인과 동거를 하여 아들 하나를 낳았다. 그러나 정순년은 1년만에 아버지에게 붙들려 집으로 돌아가고(정순년은 그때까지 결혼도 안한 처녀였다) 아들은 박헌영 사촌들이 키웠다. 후에 그의 아들(박병삼)은 스님이 되었다. 그리고 셋째 부인은 윤옥인데 북한에서 만난 여인이었다. 25살의 차이가 나는 여인이었다. 나중에 박헌영이 죽고 나서 그녀와 그의 아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기록에서 사라졌고 행방을 알 수가 없게 되었다고 한다

박헌영은 해방이 되기 전까지 이관술, 김삼룡, 이제하, 이주하, 임원근, 정태식 등 고려공청과 경성컴에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힘썼다. 30세에 아내와 소련으로 탈출하여 국제레닌학교에 입학하여 공산주의 사상 공부를 하고 공산주의 재건을 위해 상해로 갔으나 일본경찰에 잡혀 일본을 거쳐 서울로 압송되어 와 7년형을 받는다. 엄청난 고문이 뒤따르고 몸도 많이 망가졌다.

그의 나이 46세때 해방이 찾아왔다. 그 해방에서 친일파는 재빠르게 친미파로 갈아타고 반공주의자가 되어 독립운동을 위해 애썼던 사회주의 독립투사들을 때려잡는다. 북한은 스탈린의 소련이 지배하게 되는데 김일성이라는 젊은 빨치산 지도자가 들어오게 된다. 그때 박헌영이 소련에 있었다면 그가 북한의 지도자가 되었을 것이다. 남한에선 박헌영이 조선공산당의 수장으로 활동하게 되는데 그의 위상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하지준장은 조선반도가 공산주의자들에게 들어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고, 이를 간파한 친일파들은 반공주의자가 되어 보도연맹이니 서북청년단을 조직해서 좌익 테러에 나서게 된다. 그리고 사회는 극도의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4.3사건, 여순항쟁, 이현상의 빨치산 투쟁 등등이 남한 전역에서 일어나게 된 것이다.

북한의 김일성은 스탈린에게 남한을 쳐들어가겠다고 했다. 소련과 중국은 미국이 눈에 거슬렸으나 남한의 좌익들이 함께 나서준다면 한달 이내에 조선에서 승리를 할 것이란 김일성의 말에 소련은 자신들의 중고탱크를 팔고, 중국에선 조선 팔로군의 투입을 약속받고 전쟁에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남한의 친일파들은 일제시대때 전쟁에 익숙했던 군인출신들이었고, 북한은 소소한 빨치산 전투밖에 치러보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3일에 걸쳐 서울을 점령했으나 한강다리가 폭파됐다고 3일을 지체한다. 그 사이 남한군은 아래 지방에서 체제를 정비하고 미국은 급히 UN 안보리를 소집하여 참전의 계기를 마련한다. 그때 쭉 북한이 밀고 내려왔으면 아찔하다. 그런데 왜 3일을 지체했을까? 북한에서 지령이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의 개입으로 북한군은 수세에 빠지고 압도적인 제공권을 바탕으로 중공군이 개입하기 전까지 승승장구한다.

점점 전쟁의 기운이 패전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이때 김일성은 박헌영에게 그 책임을 씌운다. 그를 미제 간첩으로 몰아서 숙청을 해버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 소련에서 박헌영의 죽음을 가만히 보고있지 못한다. 그를 살리려 강하게 김일성을 말린다. 김일성은 한발 물러난다. 그것을 보고 김일성이 평양을 비운 사이 쿠테타가 일어나지만 동조세력이 없어 곧 진압되고 김일성은 이 모든 일들이 박헌영 때문이라 생각하고 방학세를 시켜서 그를 살해한다.

스탈린이 죽자 김일성은 거침이 없어지고 소련파, 연안파 등 자신의 활동에 장애가 되는 모든 세력들을 숙청하고 일당 독재 체제를 완성한다. 그리고 북한은 김일성의 파시즘이, 남한은 박정희 파시즘이 횡행하게 된다.

김일성의 잘못은 무엇인가? 일제시대만 하더라도 사회주의자는 독립투사와 동급이었다. 국민들에게 좌파는 곧 독립운동가였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그러나 전쟁은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 자기들의 형제를 죽이는 이가 빨갱이가 된 것이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노력했던 공산주의자들이 전쟁의 총알받이가

되어 나라의 정기를 이상하게 비틀어버렸다. 남한에선 좌파가 들어서기 어렵게 되었다. 지금도 빨갱이가 끔찍하다는 노인들이 많다. 친일파인 놈들은 사회의 세도가가 되어 잘 살고 있는데 목숨바쳐 독립운동했던 이들은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욕먹고 있으니 참 통탄할 일이고, 그것을 시작한 장본인이 바로 김일성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우상화 작업에 이어 3대에 걸쳐 북한을 지배하고 있다.

박헌영은 물을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 내 전 생애를 바쳤단 말인가? 나라의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그 수많은 일들과 죽어간 동료들이 김일성과 친일파를 위해서 결국 그 노력을 했단말인가?  책을 읽기가 참 어려웠다. 비극적 결말을 미리 알고 있는 상태에서 책을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을 잘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이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6.25때 감옥에서 모두 총살당하거나, 김일성의 대대적인 숙청으로 죽은 사람들, 일제 때 감옥에서 또는 고문으로 죽어간 사람들도 많다. 이들은 지금까지 이름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은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이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노력했지만 잊혀진 사람들. 그 사람들이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다. 나라가 조금 더 발전하여 그 사람들까지 끌어안아야겠다.

박헌영의 두번째 아내 윤옥과 그의 딸 나타샤(출처: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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