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19 18:36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읽고 2018

박완서 선생의 자전전 소설 2탄이다. 1탄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였고, 그 후속작으로 1.4후퇴때부터 1953년 그가 결혼하기까지를 담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는 안타까운 장면이 많이 나온다. 먼저 오빠의 죽음. 피난갔던 오빠가 돌아온지 며칠만에 죽고 만다. 그런데 전쟁통이라 제대로 된 장례 절차를 할 돈도 없고, 여건도 안된다. 그래서 하루 만에 장의사 한명 부르고 리어커 한대 빌려서 오빠의 시신을 끌고 하루 종일 걸려 공동묘지로 간다. 그런데 공동 묘지에 묻으면 나중에 관리인에게 의해 책잡힐 수 있으니 다른 곳에 묻으라고 장의사가 말한다. 그래서 묘지 뒷편 논밭 사이 어느 곳에 암매장을 해버리고 집으로 온다. 참... 엄마는 삯바느질해서 키운 아들을 잃었고, 올케는 자식 둘을 남겨두고 떠난 남편이다. 

올케는 의연하다. 폐결핵으로 죽은 올케때문에  오빠가 새장가를 얻어 새로 들어온 그녀는 1편에서는 별로 얘기가 나오지 않았으나 여기에선 아주 생활력 강한 여인으로 나온다. 사람들이 모두 떠난 서울에서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다른 집을 월담하기도 하고, 보따리 옷장수로 일년만에 동대문에 옷가게를 얻기도 한다. 

박완서 선생의 가정은 2편에서도 피난을 몇번을 가야 될 상황에 처한다. 그러나 오빠가 총상 때문에 가지 못해 북한군이 왔을 때는 북한군에 협조하다 파주 탄현까지 끌려갔고, 다시 서울이 수복되었을 때는 경찰들이 사상검증을 문제 삼아 달달 볶아대는 통에 고생을 하게 된다. 그가 향토방위대라는 곳에 취직을 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나온 얘기가 아주 단적으로 그 당시 국민들의 상황을 잘 알려준다.

"그래, 우리 집안은 빨갱이다. 우리 둘째 작은아버지도 빨갱이로 몰려 사형까지 당했다. 국민들을 인민군 치하에다 팽개쳐 두고 즈네들만 도망갔다 와 가지고 인민군 밥해준 것도 죄라고 사형시키는 이딴 나라에서 나도 살고 싶지 않아. 죽여라, 죽여. 작은아버지는 인민군에게 소주를 과 멱였으니 죽어 싸지. 재강(술찌꺼기) 얻어먹고 취해서 죽은 딸년의 술 냄새가 땅속에서 아직 가시지도 않았을라. 우리는 이렇게 지지리도 못난 족속이다. 이래 죽이고 저래 죽이고 여기서 빼가고 저기서 빼가고, 양쪽에서 쓸 만한 인재는 체질하고 키질해서 죽이지 않으면 데려가고 지금 서울엔 쭉정이밖에 더 남았냐? 그래도 뭐가 부족해 또 체질이냐? 그까짓 쭉정이들 한꺼번에 불 싸질러버리고 말지."

이 얘기를 듣던 형사는 그를 향토방위대에 넣어주고 그는 다시 피난을 가게 되었을 때 가족과 헤어져 향토방위대원들과 함께 아산까지 갔다가 다시 서울에 돌아온다. 그러나 돌아와서 접한 것은 오빠의 죽음. 전쟁이 일반 국민들에게 얼마나 끔찍한지 새삼 느꼈다.

그의 심리도 잘 드러나는 대목이 있다. .

기저귀를 구들장에 말리는 것보다는 밖에다 내너는 게 훨씬 더 잘마르게 생긴 햇살 도타운 날이었다. 모조리 불탄 마을에서 좀 떨어진 외딴집에서 무료한 낮시간을 보내다가 그 마을에 감도는 고요에 홀려서 그 고운 잿더미 사이를 거닐 때였다. 장독대 옆에 서 있는 바짝마른 나뭇가지에서 꽃망울이 부푸는 것을 보았다. 목련나무였다. 아직 단단한 겉껍질이  부드러워 보일 정도의 변화였지만 이 나무가 봄기운만 느꼈다 하면얼마나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오르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미친 듯한 개화를 보지 않아도 본 듯하면서 나도 모르게 어머, 얘가 미쳤나봐, 하는 비명이 새어 나왔다.

전쟁 통에 목련이라니... 모련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도록 마음이 황폐했던 시절이 있었다.

1953년 그는 미군 피엑스에 취직을 한다. 한 백화점을 피엑스로 바꾼 것인데 거기에 취직해서 후에 작가로 등단할 때 쓸 얘깃거리를 많이 얻는다. 박수근 화백과의 만남도 있었고, 피엑스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얻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거기서 남편을 만난다. 

그런데 결혼과정이 쉽지 않았다. 어머니의 반대. 노론 양반 가문에서 중인 집안과 결혼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냥 학교에 계속 다녀 졸업한 뒤에 너의 길을 가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고집을 꺾지 않고 그와 결혼을 한다. 여기서 그녀의 독백 한대목.

보셔요, 엄마. 두고 보셔요. 그렇게 억울해하는 건 당신의 생살을 찢어서 남의 가문에 준다는 생각 때문인데 두고 보셔요. 나는 어떤 가문에도 안 속할 테니. 당신이 나를 찢어내듯이 그이도 그의 어머니로부터 찢어낼 거예요. 우린 서로 찢겨져나온 싱싱한 생살로 접 붙을 거예요. 접 붙어서, 양쪽 집안의 잘나고 미천한 족속들이 온통 달려들어 눈을 부릅뜨고 살펴봐도 그들과 닮은 유전자를 발견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돌연변이의 종이 될테니 두고 보셔요.

대단히 강단진 대목이다. 이렇게 되어야만 한다. 부모로부터 정신적, 육체적으로 독립하여 새가정을 꾸려가는게 맞는데 1950년대에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니 그 어머니에 그 딸이다. 

그러던 그 딸도 결혼하고 신혼여행 다녀온 뒤, 친정집에 왔는데 집안에 사촌동생 말고 아무도 없다. 사촌동생이 전하는 말은 그가 시집가고 하루종일 엄마가 울었다는 것이다. 폭포수가 한꺼번에 터지듯이 터진 울음이라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갑자기 그 역시 울음이 터진다. 응어리졌던 무언가가 속에서 분출해오듯이, 해가 지도록 계속 울었다. 그리고 엄마가 다시 돌아왔을 때, 두 모녀는 웃으며 서로를 맞이할 수 있었다.

신혼 초의 박완서 선생(출처:영인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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