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06 16:55

헤밍웨이 단편선 1,2권을 읽고 2019

노인과 바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등 수많은 역작을 남긴 헤밍웨이가 처음엔 시로 등단을 하였으나 천성적으로 그는 시인에 걸맞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단편과 장편들을 많이 썼는데 민음사에서 그의 작품 중에서 유명한 것들을 골라 1,2권으로 만들어 내놓게 되었다. 2권 뒤에 있는 외대 김욱동 교수가 쓴 작품 해설을 읽어보니 그가 쓴 단편은 단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편을 쓸 때 그 소재로 사용했다고 한다. 단편에서 쓴 얘기를 장편으로 불러와서 더 살을 붙이고, 뼈대를 이뤄 썼다는 것이다.

예로 든 작품이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란 장편을 보면 낚시 장면이 나오는데, 이 소재는 '심장이 두개인 큰 강'이란 단편에서 모티브를 가져왔고, 투우사에 관한 얘기는 '세계의 수도'나 '패배하지 않는 사람들'이란 투우사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

또한 단편은 단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단편들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계속 다른 단편에서도 소환되었다. 그리하여 어린시절, 젊은 시절, 노년 시절의 주인공의 이야기를 단편으로 짧게 쓰고, 그것들을 이어보면 한 인간의 일생이 나온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작가다.

헤밍웨이는 모두 4번 결혼을 했는데 그중 둘째 부인인 폴린 파이퍼가 가장 부유한 여인이라 했다. 그녀는 파리의 '보그'지에서 근무했던 패션 작가인데, 그녀와 결혼하고 그는 미국에서도 부유층만이 산다는 플로리다 남단 키웨스트 섬으로 이주해서 호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선박을 구입하여 바다 낚시를 즐겼고, 스페인에서 투우 경기 관람하는 것도 좋아했다고 한다. 그렇게 10년동안 호화롭게 살면서 자신의 재능을 낭비하다가 후에 작품을 쓰려는 열정이 사라져 다시 글을 쓰는데 아주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글쓰는 재능이 제대로 회복되지 못한 절망감에 스스로 자살을 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의 소설이 빙산이론이라고 해서 작가가 이야기하고픈 주제를 숨기고 겉으로는 살짝 암시만 하고 내려놓은 작품들이 많아 한번 읽어보면 '이게 뭐야?'란 밋밋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작품들이 많다. '인디언 부락'을 읽어보면 닉이란 아이가 아버지인 의사를 따라 출산을 하는 어떤 인디언 가정에 방문한다. 쉽게 끝날 것 같았던 출산이 난산이 되어가고, 어쩔 수 없이 제왕절개로 아이를 꺼낸다. 읽으면서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그 여인은 죽을까, 아이는 살릴 수 있을까? 그러나 정작 황당한 것은 아내의 비명을 듣다못한 남편이 스스로 자살을 한 것이다. 아이도 아내도 살았는데 남편이 죽다니... 정말 황당한 결말이다. 작품 해설을 읽어보지 못하면 무슨 얘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재미있게 읽은 작품은 '심장이 두개인 큰 강'이다. 마치 브레드피트가 나왔던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의 송어 낚시가 생각난다. 전쟁에서 돌아온 주인공이 비박을 하면서, 며칠동안 강가에 머물면서, 송어를 잡는 과정을 아주 디테일하게 글로 담았다. 이 작품이 재미있었던 것은 내가 옆에서 주인공이 하는 모든 일들을 보는 것처럼 자세하게 묘사를 해 놓았다는 것이다. 뒤의 작품 해설은 이 작품이 전쟁에서 돌아온 주인공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송어 낚시를 통해서 치유해가는 과정을 소설로 옮긴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난 빙산이론 때문인지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역시 아는만큼 보인는 법이다.

헤밍웨이의 단편은 짧고 강렬한 문장으로 되어 있어 읽기가 쉽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빙산이론 때문인지 읽고 나서도 도대체 왜 작가가 이 작품을 썼는지,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오헨리처럼 끝에 가서 상상 못한 반전을 이루는 작품은 박하처럼 느낌이 확 오는데, 헤밍웨이는 한 작품이 끝나도 이게 왜 이렇게 끝나는지, 뒤에 더 이야기가 계속 되어야 할 것 같은데 그냥 훅 끝나서 찜찜한 마음이 계속 남았다. 그러다 보니 읽다가 지쳐 갔다. 그러나 헤밍웨이의 장편을 정독한 사람이라면 단편 소설 하나하나를 읽으면서 장편소설에서 나왔던 장면들이 단편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이 반가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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