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21 14:46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읽고 2019

김영하가 요즘 낸 짧은 산문집이다. 그의 내공이 글 곳곳에 흐른다. 역시 작가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자주하게 한다. 글쓰는 필력이 장난 아니다. 여기에서 글의 내용을 다 말하는 것은 그의 작품이 한창 팔리고 있는데 상도의에 어긋날 것 같아서 그런 얘긴 빼고 내가 좋게 느꼈던 몇가지 이야기만 해 보겠다.

프로그램이라는 얘기가 좋았다. 어느 강연에서 들은 얘기지만 인간은 개인의 성격을 알고자 할 때 크게 네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한다. 나와 너가 모두 아는 것, 나만 알고 있는 것, 너만 알고 있는 것, 나도 너도 모두 모르는 것. 나도 너도 모두 모르는 것은 잠재의식이고 이것이 프로그램이다.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 그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 프로그램이다. 작가가 한 인물을 창조할 때 이 프로그램된 것 까지 창조를 해야한다고 한다. 그는 모르는 잠재의식까지 미리 구상해서 행동으로 녹여내야 한다는 것이다. 새삼 작가의 대단함에 놀란다.

여행에서 무엇인가 얻고 와야 한다는 강박을 갖지 말자는 것도 좋았다. 비싼 돈을 들여서 외국에 나가 돌아올 때는 내가 무엇인가 얻는 것이 있어야한다는 강박말이다. 그냥 여행은 집을 벗어나 다른 곳에 가서 쉬고 오는 것이다. 만약 여행이 어떤 의미가 있으려면 주어진 여행 일정에서 벗어나서 무슨 사고가 나야 한다. 그래야 거기에서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들을 통해서 본인의 밑천이 들어나고 새삼 깨닫게 된다. 일정대로 쭈욱 이어지는 여행은 관람이다. 여행이 살아있으려면 계획에서 틀어져서 본인이 고생을 해야 한다. 작가는 그 예로 자신이 중국의 어느 집에 한달동안 기거하기로 하고 비행기를 타고 갔는데 비자를 발급받지 않아 공항에서 쫓겨나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와야 했던 기억을 말한다. 그는 한달동안 묵을 숙박비도 한푼 돌려받지 못했고, 중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편도 항공권을 비싼 가격으로 사서 돌아와야 했다. 중국으로 보냈던 물품들도 다시 돌려받는데 시간이 지체되었다. 고생을 한 것이다. 후에 그는 그의 무의식속에서 자신이 중국을 가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있었을거라 생각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누구나 한번쯤은 비자에 대해서 생각을 했을텐데 자신은 그것에 대해 알아보지 않았다고 적는다. 그리고 그가 중국에 가기 싫었던 이유도 처음 중국여행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때문이라고 밝힌다. 이와같이 여행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면 계획에서 어긋나야 하고, 그래야 자신의 밑천이 드러나고, 그러면서 깨닫고 성장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믿음에 대해서도 말한다. 막차를 놓쳐 시내까지 걸어가고 있는 새벽에 어떤 사람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자기 집에 가자고 해서 갔고, 그가 자기 마을을 여행시켜준다고 해서 같이 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보기도 힘든 힌두교 종교의식도 느끼고, 같이 어울려 춤도 추었던 경험을 소환한다. 그러면서 인류는 침략자가 전쟁으로 피를 부르는 역사를 곳곳에 갖고 있지만 이렇게 낯선 방문객을 환대하는 문화도 있음을 강조한다. 그와 아울러 믿음에는 용기가 필요함을 밝힌다. 믿음은 섹스와 비슷하다. 뒤로 넘어지면서 내 뒤에 있는 이가 나를 받쳐줄 거란 믿음이 없다면 얼마나 불안할까? 그런 믿음이 있기에 뒤로 넘아가는 스릴을 맛볼 수 있는 법이다. 그러나 읽으면서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저자가 밝힌 듯이 우리는 어짜피 그 나라에서 이방인인데 만약 나의 용기가 용기가 아닌 만용이 되어 자칫 나의 목숨을 저당잡히는 꼴이 되면 어쩌란 말인가? 10번 믿고 좋은 추억을 얻어도 한번 내가 위험에 빠진다면 난 어찌될까? 여행객들에게 그 마을의 사람들의 순수성을 믿는 것은 필요하지만 내 목숨을 가지고 운에 맡기는 것은 약간 지나쳤다는 생각이다.

이외에도 오디세우스 이야기도 재밌고, 자신의 뉴욕생활도 재미있다. 다 얘기하면 스포가 된다. 중요한 것은 그는 평생을 여행을 통해 살았고, 자신의 존재는 글쓰기와 여행이었고, 글쓰기는 많이 되었으니 여행을 목표로 글을 썼는데 우리나라의 독자들이 여기에 호응을 엄청했다는 것이다. 물론 알쓸신잡에서 나왔던 김영하의 이름값도 있었겠지만 그는 평생을 몸으로 경험해서 썼기 때문에 또다른 감동을 제공하지 않았나 싶다.

신선한 대목이 있다면 여행도 계속되면 일상이 된다는 것. 뉴욕에서 2년 동안 살면 일상이 되고, 그럼 다시 여행을 꿈꾼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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