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 작가 가브리엘 웰즈가 죽었다. 본인은 죽은지도 모른다. 그의 죽음을 알려준 이는 죽은자와 소통할 수 있는 영매 뤼시 필리피니. 뤼시는 가브리엘의 소설을 좋아했고, 그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조사해 주면 자신을 떠나간 남자친구의 행방을 가브리엘이 조사해달라는 거래를 한다. 그리고 가브리엘이 조사에 나서면서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냐스를 만나고, 그의 도움을 많이 받으며 사건의 실체에 접근한다. 그의 할아버지는 살아 계셨을 때 형사였으며, 지금도 코난 도일같은 유령과도 만나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녀도 가브리엘의 주변 사람들을 탐문하기 시작한다. 그의 형, 출판사 사장, 여자친구, 그의 작품을 싫어하던 비평가. 하지만 증거는 없고 서로 다른 주장만 난무한다. 그러다가 그의 형 토마가 파동을 이용하여 죽은자와 대화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고 있음을 안다......죽음을 소재로 했지만 산자와 죽은자가 대화하고 심지어 죽은 가브리엘이 영매 뤼즈의 몸속에 들어가기도 하고, 뤼즈는 자기 몸을 가사상태로 두고 영혼이 빠져나와 죽은 혼령들과 세상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죽은 소설가들이 소설의 가치에 대한 생각의 차이 때문에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죽어서 전쟁을 벌이는데 거기서 죽으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환타지 추리소설이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론 주인공 가브리엘을 통해 작가 자신의 삶이나 생각들을 나타내기도 한다. 작가는 실패의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 경험들은 나중에 자신이 글을 쓰는데 중요한 씨앗이 된다. 그도 신문기자로 활약하던 때, 고위직과 연루된 비리를 3건이나 취재했지만 데스크의 압력으로 모두 기사화되지 못하고 직장에서 쫓겨난다. 그후 소설가가 되어 그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 3권을 쓰고 모두 히트작이 된다.
비평가 장 무아지는 그의 작품을 쓰레기라고 비판한다. 허무맹랑한 줄거리 위주의 글을 써서 독자를 현혹한다는 것. 자신은 고전에 나오는 글처럼 사유하는 글을 쓴다. 독자가 외면한 글쓰기가 무슨 의미가 있냐는 가브리엘의 비판에 작가는 독자를 선도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대꾸한다. 추리소설이나 SF소설, 환타지 소설등 장르소설은 소설이 아니라는 얘기다. 장르소설은 쉽고 재미있지만, 독자를 감동이나 의미있는 사유를 할 순 없다는 것이다. 이해하기 어렵고 지루한 고전을 읽을 것인가, 읽기 쉽고 재미있는 장르물 소설을 읽을 것인가? 오늘날의 프랑스는 이런 주제로 많은 얘기들이 오가는가 보다.
동서양의 죽은자에 대한 시선이 다르다. 언젠가 도울 선생이 조선의 유교문화에서 죽음에 대해서 강연한 것을 방송에서 본적이 있다. 그는 사람이 죽으면 몸에서 기(氣)가 빠져나간다고 했다. 빠져나간 기는 뭉쳐있다가 서서히 공기중으로 흩어진다. 천수를 누리고 죽은 이는 그 기도 쉽게 흩어지는데 젊은 나이에 갑자기 죽은 사람의 기는 똘똘 뭉쳐져 잘 흩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처녀, 총각귀신이 무섭다는 얘기. 조선 유교사회에서의 죽음에 대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베르베르는 나폴레옹이 나오고, 에디슨이 나오고, 코난 도일이 나오고, 심지어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나온다. 책 끝부분으로 가면 사고가 우주적으로 확장되어 태양 뒷편에 있는 행성에까지 이르게 되니 그의 상상력이 아주 무한하다.
양장본으로 만들지 말고, 책의 크기를 좀 더 키우고 재생지 사용해서 한권으로 묶어내도 좋을만한 두꼐의 책이다. 책의 크기를 작게하고 양장본에 깔끔한 디자인 등은 작가의 이름을 업고가자는 출판사의 영업 전략이 분명 있을 것 같다. 

책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백과사전의 내용이 재밌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헤디 라마라는 여배우. 그녀는 1930년대의 여배우인데 현대 와이파이의 시초가 되는 발명을 했다고 한다. 미모도 절색이다. 그리고 러시아 짜르 정권을 몰락하게 했던 라스푸틴. 총을 맞고도 안죽고, 알몸에 둘둘 말아 차가운 강에 버렸는데 시체는 총상으로 죽은 것이 아니고 묶였던 것을 풀고 헤엄쳐나오다 익사해서 죽었다고 한다.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