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03 22:37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읽고 2019

사람은 아무도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일부이다.
흙 한 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가면, 유럽은 그만큼 줄어드니,
그건 곶이 씻겨 나가도 마찬가지이고,
그대의 친구나 그대의 영지(領地)가 씻겨 나가도 마찬가지이다.
누구의 죽음이든 그것은 나를 줄어들게 하는 것이니
그것은 내가 인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저 종소리가 누구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인가 알아보려고
사람을 보내지 마라.
그것은 그대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이니. 

여기서 말하는 종소리는 일반 교회의 종소리가 아니라 누군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 그를 위로하는 조종(弔鐘)이다. 이 시의 뜻은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고 나의 역할이 작게는 가족에서 크게는 국가와 세계에까지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언젠가 한번 죽기 때문에 누군가의 죽음은 곧 자신의 죽음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주인공 로버트 조던은 미국 몬티나 출생인데 스페인에서 파시스트 정부가 등장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건너가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일년 후에 그는 공화파 사령부로부터 다리를 폭파하라는 명령을 받고 과다라마 산맥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는 부대와 연합하여 작전을 수행한다. 그는 자신이 이 명령을 받고 어쩌면 죽음을 예상했는지도 모른다. 필라르도 그의 손금을 보고 죽음을 미리 보고 입을 다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 다리를 폭파하는 것이 하나의 개인 행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이 행동으로 전체 전쟁의 판세가 바뀌고 이는 세계사의 흐름이 바뀌는 것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때 그의 죽음은 헛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는 마리아를 만난다. 마리아는 파시스트로부터 부모를 잃고 끔찍하게 성폭행을 당한 뒤, 머리를 삭발당했는데 필라르가 그녀를 자신의 소굴로 데려와서 마음의 평정을 얻은 처녀였다. 마리아와 조던은 만나자마자 곧장 사랑을 느끼고 그 둘은 그날밤에 사랑을 나눈다. 필라르는 자신의 소굴에 있는 대원들에게는 마리아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지만 조던에게는 그것을 허락하고 독려한다. 아마도 그만이 그녀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었음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3일동안 지내면서 이틀 후 눈이 온 날 아침 엘소르도 영감이 있던 소굴에 파시스트 소대가 들이닥친다. 지난밤에 엘소르도 영감 부대원이 적들의 말을 한마리 훔쳐갔는데 그만 눈에 발자국이 남은 것이다. 그 발자국을 따라 적들이 영감의 부대를 공격했지만 로버트와 다른 빨치산들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동지가 죽어가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비통함. 이성으로는 가지말아야 하는데 양심이 너무 찔려서 움직이려는 부대원들을 진정시키는 조던과 필라르.

한때는 영웅이었으나 지금은 겁쟁이로 전락한 빨치산 대장 파블로는 이 전투를 보고 그날 밤에 조던이 다리를 폭파시킬 폭약과 뇌관 등을 훔쳐서 도망을 간다. 그걸 깨닫고 난감한 필라르와 조던. 그러나 계획된 다리폭파는 계속 진행한다. 그리고 돌아온 파블로. 엘소르도 부대원의 도움을 받지 못하자 다른 대원들을 섭외하여 데려온 것이다. 그리고 다리 폭파와 파시스트와의 전투가 진행되고 자신이 좋아했던 안셀모 노인도 죽고, 파블로가 데려온 대원들도 모두 죽고 만다. 그리고 조던도 후퇴하는 과정에서 다리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고 후방으로 도망가지 못하자 마리아와 다른 부대원을 후퇴시킨다. 그리고 엘소르도 영감을 죽음에 이르게 한 적군 장교에게 총을 겨누며 이야기를 마친다.

두권짜리라 이야기가 길어 다 쓰기는 뭐하고 전작 '무기여 잘 있어라'와 비교하자면 그때는 프레드릭 헨리와 캐서린의 개인적인 사랑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조던과 마리아의 사랑이 더 고차원적인 사랑 같았다. 조던은 죽지만 그의 죽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 헨리는 캐서린과의 사랑을 위해서 부대를 이탈하여 스위스로 탈주하지만 조던은 마리아와 공화파를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다. 조던은 마리아와 사랑을 하면서 30년 같은 3일을 보낸다. 양보다 질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어떤 이는 한평생 겪어보지 못할 사랑을 3일동안 마리아와 나눴다. 마리아 또한 부모님을 죽인 파시스트로부터 당한 트라우마를 조던과의 사랑으로 극복한다.

그는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했지만 3일간의 작전 수행을 하면서 자신이 죽을 수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둔다. 문제는 죽음에 임하는 자세이다. 종교를 가진 사람은 신에 의지하면서 천국을 바라볼 수 있지만 그에겐 종교가 없다. 그러므로 죽으면 끝이다. 인간은 모두 한번 죽을 수 밖에 없고,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다. 자신의 죽음이 품격있기를 바랐다. 아버지는 자살로 삶을 마감했고, 할아버지는 독립전쟁에 참여하여 전공을 올렸기에 자신은 할아버지를 동경하고, 아버지를 부끄러워했다. 그러므로 그는 마지막 순간 자신의 다리가 부러져서 고통이 몰려올 때 자살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최후까지 적의 장교에게 총을 겨누고 끝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한 다리 폭파가 전쟁의 전환점이 되길 그는 바랬다. 파시스트 독재가 물러나고 마리아같은 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란 것이다. 그의 죽음으로 조종은 울렸지만 그 종소리는 안타까움과 슬픔과 애도를 담고 있을 것이다. 그의 삶이 고귀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일상과는 하등 상관없는 전쟁에 참여하여 한 여인을 만나 열열하게 사랑했고, 많은 사람들을 구하고자 자신의 목숨을 바친 것이다. 헨리와의 삶과는 아주 많이 다르다.

스페인 내전은 아쉽게도 파시스트 잔당인 프랑코 정권의 승리로 끝났다.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뭇솔리니와 함께 파시스트가 유럽을 휩쓸게 되었다. 헤밍웨이는 스페인 내전이 끝나고 이 소설을 썼다. 아마 그 뜻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자꾸 6.25전쟁이 겹치게 보여진다. 스페인에서도 같은 민족끼리 사상이 달라서 마을 사람들이 도륙을 당했듯이 우리네도 그런 아픈 기억이 있었다. 박완서의 초기 소설에서도 전쟁에 대한 상흔이 깊게 배어 있고, 윤흥길의 '장마'를 봐도, 빨치산의 모습을 다룬 태백산맥에서도 이념 때문에 서로 갈라져서 서로에게 죽음의 굿판을 벌였던 상처가 있었다. 우리네 소설가들도 상흔만 들추지 말고, 조던 같은 인물을 창조해봤으면 좋겠단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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