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1 16:44

어린왕자를 읽고 2019

어린왕자를 일컬어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하던데 난 이 책을 읽기에 주저주저하다가 읽기를 포기한 경험이 많았다. 중학교때,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데 무슨 뜬구름 잡는 얘기도 아니고, 사건의 개연성도 떨어지고, 상징과 비유가 많이 나와서 그런지 도통 내용이 쉽게 들어오지 않아 포기하고 그냥 도서관에 책을 반납했었다. 그 후에도 몇번 읽어보는데 지구에 불시착하는 모습을 보지도 못하고 그냥 포기했다.

신문에서 보니까 어떤 사람은 이 책을 너무도 좋아해서 100번 넘게 읽은 이도 있었다. 나중엔 책을 달달 외웠단다. 그렇게 외워서 대학 갈 때 논술 시험을 보는데 논술 주제가 어린왕자의 한 경구와 비슷해서 그 구절을 그대로 인용해서 그 대학에 붙었다는 일화를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다.

난 그런 추억이 없어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번에 작심하고 한번 읽어보자 했다. 아니, 이번엔 필사다. 책을 모조리 필사하는거다. 하다보면 내용을 조금 더 깊이있게 정리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필사를 마치고 유튜브로 어린왕자 감상평 등등을 검색해 보니 마지막에 그가 뱀에 물려 자살했다는 의견도 있었고, 어린왕자의 멋진 경구들을 소개하는 내용도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코엘료의 '연금술사'가 떠올랐다. 구성도 유사하고,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것도 그렇다. 어른들에게 이런 류의 책이 인기가 있는 것은 아직 남아있는 어린날의 감수성을 제대로 건드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잊고 지냈던 순수에의 동경이 의식을 비집고 불쑥 나왔기 때문일까?

내용은 조그마한 소행성에 살고 있던 어린왕자에게 갑자기 장미꽃이 찾아온다. 장미는 가시를 가지고 있는 화려한 꽃. 어린왕자는 장미꽃을 사랑하지만 그 꽃은 도도하기만 하다. 결국 어린왕자는 그 별을 떠나고, 장미꽃은 자신의 진심을 비로소 말한다. 어린왕자는 여러 별을 여행하며 다양한 군상의 사람들을 만난다. 지구상에 살면서 쓸데없는 일에 인생을 낭비하는 인간 군상들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돈, 권력, 명예 등등. 그런 것에 목을 매는 이들을 보면서 어린왕자는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기 어렵다.

지구로 온 어린왕자는 나를 만난다. 사막에 불시착해서 곤란을 겪던 나에게 어린왕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면서 멋진 문장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몇가지 소개하자면,

네 장미를 그렇게 소중하게 만든건 네가 너의 장미에게 소비한 시간 때문이야.

그러나 너는 잊으면 안돼. 네가 길들인 것에 너는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집이나 별에서 사막이나 그걸 아름답게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야.

오후 4시에 네가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하게 되지. 너는 나한테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것이 될거야. 나는 너에게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것이 될테고...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여러분들이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고 어른들에게 말하면, 어른들은 도무지 중요한 것을 묻지 않는다. '그애 목소리는 어떠니? 그애는 무슨 놀이를 좋아하니? 그애도 나비를 채집하니?' 절대로 이렇게 묻는 법이 없다. '그앤 나이가 몇이지? 형제들은 몇이나 되고? 몸무게는 얼마니? 그애 아버지는 얼마나 버니?'

그렇다. 그 존재가 소중한 것은 그에게 쏟은 시간이 있기 때문이고, 그 시간 덕분에 난 그 존재에 대해 책임이 있다. 반려묘도 서로에게 길들여져야 소중한 존재가 되듯 인간도 서로에게 길들여져야 의미있는 존재가 된다. 어른들의 허위의식을 말하는 모습도 날카롭다. 정작 알아야 할 것들은 묻지 않고, 곁가지만 묻고 있는 어른들 말이다.

그가 자신의 별로 잘 돌아갔는지, 아니면 자살을 한 것인지, 그도저도 아니면 주인공인 나의 어린 날의 감성을 어린왕자에 빗댄 것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잠언과도 같은 몇구절의 말이 좋았다는 것. 그러나 더이상의 감성은 없었다. 내가 조금 더 젊어서 읽었더라면 좋았겠는데 감정이 무뎌져서 그런지 외울만큼 읽고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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