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9 23:38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 2019

이 책을 읽고 싶었지만 그동안 망설였던 이유는 여럿이 있다. 그중에서 제일 컸던 것은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소설이 갖는 그 무거운 주제 의식이 부담이 되었다. 왠지 우울하고, 가슴 아프고, 그걸 읽으면서 내가 겪게 될 마음 속 분노(?)같은 것들을 생각하자니 굳이 이 책을 읽어 그런 감정으로 내 정신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음 먹고 한번 읽어보았다. 신경숙은 이 책을 필사까지 했다고 외딴방에서 밝혔는데 도대체 어떤 책일까란 궁금증이 컸다. 읽어보니 대단한 책이다. 물론 우울하다. 사회의 가장 밑바닥 계층에서 벌어지는 일을 사실적으로 잘 묘사했다. 그러나 그런 책이나 영화는 많다. 그런데 왜 난쏘공일까?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본 이 책의 장점은 작가의 엄청나게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올곧게 사회 비리 고발에만 몰두하지 않는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 사실적이다. 마치 그들과 같이 몇십년 살았던 사람처럼 정말 묘사를 잘했다. 그래서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사회의 엘리트 의식을 갖고 있는 자들의 허위의식 같은 것이 잘 드러난 것 같다.

또 다른 장점은 이야기를 하면서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에피소드들이다. 처음 시작부터 뫼비우스의 띠가 등장한다. 오늘 하루만 버티고, 내일 열심히 살면 이 지긋지긋한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뫼비우스의 띠가 나타낸다. 계속 반복되고, 조선시대에도 노비의 자식이었고, 현재는 최하층의 노동자로 같은 삶을 이어가는 그들의 모습.

작가가 고민을 많이 해서 쓴 책이 틀림없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그곳을 떠나가야만 하는 소외된 사람들이 어떤 시스템을 거쳐서 쫓겨나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자료조사가 철저한 것이다.

난쟁이는 결국 공장의 철탑에 올라가 쇠공을 달나라까지 쏘아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땅으로 떨어져 죽는다. 그리고 남겨진 두 아들과 딸은 공장에 취직하나 최소한의 생존도 보장받지 못할 시급을 받으며 어렵게 살아간다. 그러나 사업주는 수십억의 돈을 기부하며 자신의 이미지를 포장한다. 그 돈은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할 돈이었다. 결국 큰 아들이 사장을 죽인다는 것이 착각하여 다른 친척을 죽이고, 결국 사형선고를 받고 삶을 마감한다.

1970년대가 어떤 시대였나? 전태일이 분신하고, YH사태가 터지면서 노동자들이 서서히 자신의 권리를 알아가던 태동기였다. 그때 나온 책이 이 책이다. 앵무새죽이기가 사람들에게 흑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던 것처럼 이 책이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꾼 책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책은 100만권이 팔리는 고전이 되었다.

내가 70년대에 이 책을 읽었다면 난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나 가슴 아파서... 그리고 현실은 바뀌지 않는데 너무나 가슴아프게 노동자의 생활을 묘사했으니 읽으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는가? 물론 지금도 옛날과 다를 바가 없다. 비정규직이 천지다. 청년 백수가 넘쳐나고, 제대로 된 정규직 직장을 얻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그래도 행복동 사람들처럼 하루 세끼 굶거나, 손발이 잘려나가도 누구에게 항변하지 못하는 세상은 아니다. 노동법도 있고, 여당이 서민적이다. 시급도 1만원에 육박하고, 주52시간 근무도 머지 않아 실시될 것이고, 주 5일제도 완전 정착하였다. 당시의 박통이나 전통시대가 아니다. 그러기에 난 70년대에 난쏘공을 그때는 읽지 못했다. 지금은 읽을 수 있다. 그나마 나아졌기에...

1인당 GNP 3만달러 시대다. 4인가족하면 12만달러, 1억2천. 5천만 인구를 가구수로 나누면 한 가정당 연봉이 1억2천이 나온다는 얘기다. 꿈같은 얘기지만 현재는 그렇다. 1억2천의 연봉을 받는 국가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한 정책을 궁핍하게 펴는 것은 나라다운 나라가 아니다. 우리가 왜 그렇게 열심히 돈을 모았는가 말이다. 사우디에 가서, 독일 광부로 가서, IMF때 금모으기를 해서 돈을 모아 그 돈을 어디에 써야 하나?

신문에서 자폐 아들을 키우는 어느 어머니의 수기가 실렸다. 가슴이 절절하다. 사람들은 치매에 국가가 투자하는 것에는 용납을 하지만 자폐에 세금을 투자하는 것을 싫어한다. 치매는 내가 나이들어 걸릴 수가 있는 평범한(?) 병이지만 자폐에 걸리는 아이는 소수니까 거기까지 자기 세금을 쓰기 싫은 것이다. 온전히 그 몫은 그 부모가 된다. 그 가족에게 떠맡기고 애써 눈길을 피하는 나라가 과연 문명국이고 선진국일까? 1970년대는 야만의 시대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조세희가 바라보던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따스한 눈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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