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필사를 했다. 근 한달 걸린 것 같다. 적을 때는 한두장, 많을 때는 7-8장 정도를 하루에 쓴 것 같다. 쓰다보니 내가 읽기 어려웠던 이유를 정확히 알았다. 문제는 헷세가 글을 쓰는 문체가 나와 전혀 맞지 않는 것에 있었다.
헷세의 문체는 너무 현학적이다. 쓸데없는 미사여구와 가볍게 한두줄로 끝날 이야기를 만연체로 줄줄이 이어서 쓰는 지, 필사를 하면서도 짜증이 났다. 감정의 과잉도 심하다. 무슨 사건이 벌어지면 그것 때문에 죽을만큼 괴롭다. 물론 죽을만큼 괴로울 순 있지만 무슨 일들이 벌어지기만 하면 다 죽을만큼 괴롭단 말인가? 죽음이란 단어가 너무 쉽게 쓰여지니 값어치가 떨어지는 감정의 과잉이 책 속에 많이 담겨 있다.
쓸데없는 형용사나 부사, 감탄사, 대명사도 엄청나게 많다. 그런 말 모두 쏙 빼버리면 아마 책의 두께가 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이 양반은 분명히 속좁은 A형일 것이다. 글을 읽다보면 성격이 나온다. 내가 판단할 땐 그렇다.
그리하여 나는 이 책을 읽기가 어려웠다. 중심 이야기의 주변부만 맴돌다가 슬쩍 중요한 얘기 흘리고 지나가버려 그것 해석하기도 지쳤고, 만연체의 문장을 읽기도 힘들고, 쓸데없는 단어들이 줄줄이 나열되는 것들 때문에 지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왜 필사까지 하면서 읽었는가? 필사한 이유는 간단하다. 읽으면 지겨워서 포기하니까 필사를 하다보면 쓴 것이 아까워서 계속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책도 로이텀 공책을 사서 했다. 비싼 공책이다. 글자도 가급적 정성들여 쓰려고 노력했다. 어린왕자에서 여우가 말한 것처럼 내가 시간을 투자해야 소중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오늘 모두 필사했다.
그러나 필사 때문에 읽었다면 좀 허망했을 것이다. 왜? 필사할만한 책은 엄청나게 많다. 호밀밭의 파수꾼도 있고, 연금술사도 있고,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도 있고, 어린왕자의 글도 필사하기 좋다. 그런데 이 책은 지겹다.
싱클레어는 부잣집 귀한 도련님이다. 그의 세계는 두 세계다. 자신의 가정 같이 편안한 사회와 거리의 시장판 처럼 거친 사회 말이다. 난 가정의 보호를 받으며 편안한 삶을 구가하다가 프란츠 크로머란 못된 놈을 만나 제대로 코가 꿴다. 그의 협박에 못이겨 있는 돈, 없는 돈 갖다 바치고, 빵셔틀에, 누나를 소개해달라는 협박까지 듣지만 그 수렁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모르는 지옥같은 날을 보낸다. 그때 나타난 인물이 데미안이다. 그는 크로머를 나에게서 떨어지게 해준 은인이다. 거기다가 카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면서 내 사고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성경에 나와 있는 카인은 동생을 죽이고, 신까지 속이려한 놈이지만, 데미안은 그걸 용기라고 말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힐 때 두 죄수가 같이 있었는데 한 죄수는 예수를 인정하고 기독교를 받아들였지만 다른 한명은 끝까지 예수를 부인한다. 그리고 데미안은 그 부인한 죄수 속에서 카인의 모습을 본다.
그러면서 싱클레어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만 그 집은 옛날의 집과 다르다. 그러다가 중학생이 되면서 데미안과 헤어져 방황을 겪는다. 술도 엄청나게 마시고, 친구들과 말썽을 일으키고, 거의 퇴학수준까지 간다. 그러다가 한 여인을 발견하고, 이름도 모르는 소녀에게 베아트리체란 예명을 지어주고, 얼굴을 그려 그녀에게 주려하지만 자신이 그린 인물은 데미안이었다.
그러다가 데미안 편지를 받는데 거기에 적힌 유명한 문장 '알을 깨고 나오는 새'이야기가 나온다. 모든 새는 자기를 감싸고 있는 알을 깨고 나와야 새가 되는 것처럼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환경이나 습관같은 틀을 깨고 나와야 비로소 한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압락사스에 관한 피스토리우스와의 대화. 그리고 데미안이 말한 무엇인가 강력하게 원하면 그건 이루어진다란 가정(언젠가 시크릿이란 책이 이와 비슷한 주제를 가졌다)과 실험을 하고, 대학생때 데미안 집에 가서 데미안의 어머니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곧 발발하는 세계1차대전, 그 둘은 모두 징집이 되고, 큰 부상을 입은 싱클레어 옆에 죽어가는 병사가 한명 있었는데 그가 바로 데미안이었다. 네 마음 속에 언제나 내가 있겠다는 말 한마디 나누고 떠나간 그.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말하길 세상의 모든 물체는 태어나면서 그 쓰임이 생기지만 그렇지않은 존재가 있으니 바로 인간이다. 못은 태어나자마자 나무에 박히는 쓰임이 있고 돼지는 태어나면 언젠간 인간의 입으로 들어가는 쓰임이 있다. 그런데 인간의 쓰임은? 없다.인간은 무엇을 위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태어나는거다. 부모가 서로 사랑했기에 태어나는 것 뿐이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살아가면서 내가 어떻게,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할지 찾아가야 한다. 그 길을 제대로 가려면 가정, 습관, 제도, 법 등의 알을 깨고 나와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야 나의 본 모습을 찾을 수 있고, 그래야 내가 가는 인생의 길이 당당할 수 있다. 그 알을 깨지 못하면, 주변의 압럭에 굴복하면, 결국 나는 내가 아니라 ~의 아들로써 공부를 잘해야 하고, ~의 남편으로 돈을 잘버는 직업을 가져야 하고, ~의 아버지로써 미래를 저당잡힌 채 똑같은 개미굴로 자식들을 밀어넣을 것이다. 그러나 싱클레어를 보니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 그렇게 쉽지않고 용기가 많이 필요할 것 같다. 그것이 세계1차대전이 끝난지 백년이 지난 현재에도 이 지겨운 책이 사람들에게 계속 읽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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