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까미 하루끼가 1987년부터 89년까지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쓴 여행기다. 읽으면서 처음 느낀 감정은 부럽다는거다. 일주일동안 여행한 것도 아니고 무려 3년을 외국, 그것도 극동아시아에서 남부유럽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돈과 시간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는 남부유럽에서도 주로 그리스에 머물렀다. 그는 이곳에서 '상실의 시대'와 '댄스 댄스 댄스'란 두 권의 책을 창작했고, 아다시피 '상실의 시대'는 공전의 히트를 했다. 그외에도 여러권의 번역서를 냈다. 역시 부럽다. 작가들은 글을 쓰기 위해서 저렇게 자기에게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에서도 생활을 꾸려나가는구나. 란 생각에 부러웠던 거다. 생각해 보면 아무리 유럽여행이래도 한두달도 아니고 3년을 버티려면 무슨 일을 해야 한다. 안그러면 그 시간의 무게에 눌릴 것이 뻔하다.
그러나 그는 작가이기 때문에 일어나서 글을 쓰면 된다. 글을 쓰다가 지치면 나가서 구경을 한다. 새로운 음식을 먹고, 공연을 보고, 이웃을 만나 담소를 나누고... 얼마나 여유로운 풍경인가 말이다. 그는 작가이기 때문에 집안에서 자기 소설을 쓰면 되니까 사람들에게 치일 일도 그만큼 적다. 노동을 집에서 글을 쓰는 일로 하니 굳이 외국에 나가 언어때문에 고생할 일도 적다.
또한 부러운 건, 그가 이렇게 외국에 나가 생활을 하면서 겪은 생활을 글로 엮어서 또 돈을 번다는거다. 책을 써서 돈을 벌고, 여행을 하니 좋고, 자기의 경험을 책으로 써서 또 돈을 버니 이런 직업이 어디에 있는가 말이다. 이름을 떨치는 작가가 되면 이렇게 부러운 일들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필명을 떨쳐도 그가 쓴 글이 좋지 않으면 그걸 사려는 사람은 없을거다. 생각해 보면 간단하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는게 얼마나 지겨운 일인가? 더군다나 내가 돈을 내고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는다는거는 대단한거다. 그리고 이 책은 그것을 해냈다. 왜냐? 감성적이고, 아름다우며, 내가 그리스와 로마에 없으면서도 거기에 다녀온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따로 없다. 그냥 그가 3년동안 그리스와 이태리를 여행하면서 경험했던 일들을 적은거다. 그걸 읽으면서 느꼈던 점은 그리스가 의외로 추운 곳이라는 것, 그리스가 같은 위도에 있는 줄 몰랐다. 우리와 같은 위도에 있고, 옆에 지중해가 있으니 아무래도 겨울에 추위가 좀 세게 오는 모양이다. 폭풍때문에 고생한 경험도 나오는데 어디가나 기후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리스와 이태리에 그렇게 싱싱하고 풍부한 물고기와 식자재가 나오는 줄 몰랐다. 그가 제시한 레시피와 먹었던 음식들을 보고 있자면 나도 그곳에 가서 요리를 해 먹어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가장 탐나는 것은 안첼린가 어딘가 가서 숙소의 주인이 소개해준 포도주 10만원 어치 구입한 얘기. 상점에 전시된 것이 아니라 직접 포도농사를 재배하는 사람이 직접 담근 포도주를 구입했던 경험.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지인들은 모두 알고 있는 그런 포도주를 맛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또 이탈리아 사람들의 국민성. 행정업무 엉망이고, 말은 많은데 뭐 하나 제대로 수습을 못하고, 대충 넘어가는 그들의 습성. 로마에 그렇게 도둑이 많은지 몰랐고, 그렇게 도둑이 많은데도 치안을 제대로 잡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그들의 국민성이 놀랍고, 자동차를 엉망으로 만들고도 그 불편함은 오로지 소비자의 몫으로 남는, 그런 마인드를 가진 그들의 국민성에 놀랐다.
사실 이태리가 어떤 나라인가? 로마의 영광은 예전에 없어지고, 계속된 박해와 나라잃은 설움을 겪다가 프랑코 독재와 무솔리니가 등장한, 그리고 지금도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는 나라가 아닌가? 그런 나라가 어째서 선진국인지 이해가 안된다. 이태리 국민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조상의 문화유산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책은 쭉쭉 읽힌다. 뭐 읽으면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뭐 하나 제대로 작동되는 것이 없다. 왜 하루끼는 남부유럽에 갔는지 이해가 안된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나 스웨덴처럼 사회 체제가 잘 갖추어진 곳이 글쓰기에는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그런 나라는 별로 재미는 없을 것 같다.
그리스의 조그마한 섬에 들어가 허름한 집 하나를 한달동안 임대해서 글을 쓴다. 아침에 일어나서 조깅을 하고, 8시간동안 글을 쓰고, 아내와 같이 시장에 가서 먹거리를 구입하고, 집에 돌아와 요리해서 먹고, 술 한잔 마시고, 아내랑 같이 문화생활을 하거나 글을 쓴다. 그런 가운데 이웃들을 만나고, 사건사고가 벌어지고, 거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어느 곳이나 완벽한 나라는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경험들이 벌어진다. 억울한 일도 겪고, 기쁜 일도 겪는다.
언젠가 나도 은퇴를 하면 유럽에 1년동안 가서 살고 싶었다. 1년동안 유럽에 가서 각 나라를 돌아다니며 박물관을 탐방하고, 사진을 찍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었다. TV 화면에 비춘 고풍 창연한 중세건물들을 보면서 그곳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생각이 바뀌어 가고 있다. 그 중세의 건물들 안에서 생활하려면 온수도 잘 안나오고, 방음도 잘 안될 것이고, 10시만 넘으면 편의점 한 곳도 문을 열지 않는다. 답답하다. 그리고 행정적으로 답답한 그들의 문화와 아무 곳에서나 담배를 피고, 개똥이 도로에 넘친다면 텔레비전에서 봐 온 그런 이미지와 너무 다르기 때문에 힘들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세기가 바뀌어 2000년대고, 그 당시는 1980년대의 끝물이기 때문에 이태리나 그리스도 지금은 많이 바뀌었겠지. 하지만 그리스는 국가 부도설이 나왔던 나라이고, 이태리 역시 코로나때문에 숱한 사람들이 죽어나간 곳인데 과연 지금이 그때와 비교해서 많이 바뀌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작가는 아무래도 농부보다는 유목민이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한다. 낯선 곳에 자신을 떨어뜨려 새롭게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난 이 책 먼북소리를 읽으면서 '상실의 시대'가 생각났다. 먼 북소리에는 그가 맛본 요리나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 잘 써 놨는데 상실의 시대에서도 그가 좋아했던 음악에 대해서 잘 써놨던 기억이 있다. 같은 나이때에 글을 쓰다보니 같은 문체가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글들이 비슷했다. 그래서 좋았다. 그러나 유럽의 장기여행은 좋지 않다는 깨달음을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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